서울 골목 투어와 영재이야기 그 중간쯤 어딘가
융합이라는 새로운 시도
어제는 자율동아리 아이들과 활동을 같이 하기로 한 날이다.
과학에 관심이 많고 자연계 진학을 꿈꾸며 자기들이 직접 동아리 활동 하고 싶다고 찾아온 7인의 용사들이다.
혼자 공부하기 결코 쉽지 않은 과학을 좋아한다는 것이 기특하고
그래서 더더욱 걸어가야 하는 길을 맛보게 해주고 싶어서
기꺼이 지도교사를 해주겠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추천서를 써주어야 하는 수고쯤은 감수해야 할 테지만...
그 학생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면 추천서 작성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알지 못하면 어렵다.
다양한 활동을 같이하면 그 학생을 잘 알게 되기 마련이고 구체적인 사례 중심의 추천서를 작성하는게 쉽다.
먼저 과학실에 모여서 자신이 진학하고 싶은 학교 홈페이지를 찾아보고 자기소개서 초안을 작성했다.
적어도 두 곳은 알아보자 했다. 인생에는 늘상 Plan B까지 준비해야 하는 법이다.
희망이 과학고인 학생도 있고 일반고인데 과학중점학교인 학생도 있다.
자연계를 희망하는 이유를 구체적인 사례를 중심으로 500자 이내로 작성하는 연습을 해서 나에게 보내면
나는 이 내용을 첨삭 수정 등 지도 해주려 한다. 여러 차례 왔다갔다하다보면 분명 업그레이드 될 것이다.
제법 똘똘한 아그들도 글의 처음을 어떻게 쓰냐면서 난감해한다. 그렇다. 글을 시작하는것은 누구에게나 어렵기 그지 없다.
자기소개서는 서론이 필요없다. 직접 본론으로 가야한다.
글자수 제한도 있지만 서론을 여유롭게 읽어줄만한 입학사정관은 아무도 없으니 말이다.
자기에 대한 객관적이고 투명한 생각을 정리해보는 작업을 위해서 자기소개서 작성 활동은 꼭 필요하다.
이후 오늘의 주 활동을 위하여 이른 저녁을 먹으러 갔다.
어제 점심 식단이 나의 입맛과 맞지 않아 배가 많이 고팠다.
을지로에는 많은 맛집이 있다. 그렇지만 8명이 함께 5시 직전에 식사를 할 곳은 생각보다 많지는 않다.
브레이크 타임에 걸리기도 하고 좌석이 널널하지 않은 곳도 많기 때문이다.
약간 무리를 해서 들어간 고기집은 목살과 삼겹살을 전문가가 잘 구워주고
특유의 고기 찍어먹는 양념과 김치, 명이나물, 미역줄기와 고추잘게 자른 것등이 맛난 집이었다.
아이들은 사진을 찍어 인스타에 올리고 나를 태그도 하고 신나하면서 고기를 맛있게 먹었다.
아마 나중에는 오늘 고기 먹었던 것만 기억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오늘의 주 활동지는 정독도서관이다. 나에게는 추억의 장소이다. 인근 여고 출신이다.
여고생이던 그 당시에는 북촌 일대 이곳이 그리 멋진 곳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 당시 집은 화곡동이었고 아침 만원버스에 시달려서 없던 멀미도 저절로 생기는 통학길이었다.
그 때 이런 멋진 골목임을 알았더라면 나의 고등학교 생활이 뻑뻑하지만은 않았을텐데...
지금은 맛과 멋의 거리가 분명한 그 곳을 걸어서 주변을 구경하면서 올라갔다.
이 과정을 위해서 저녁을 조금 일찍 먹은 것이다.
주변을 구경하는 일은 융합적 사고가 꼭 필요한 멋진 활동이다.
새로운 디자인 감각을 보면서 키우는 일은 모든 일을하는데 꼭 필요한 역량이다.
걸으면서 구경도 하고 도착한 정독도서관에서는 <금요일에는 과학터치> 라는 오래된 과학 특강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매번 주제와 특강 강사님들이 바뀐다. 주로 대학 교수님들이다.
어제는 뇌과학자의 연구 이야기였다. 주제를 보고 학생들이 직접 선택한 것이다.
마침 나도 뇌과학 범위에서 학위 논문을 쓴 터라 오랜만에 논문을 준비하던 그때 기억도 났다.
특강 전에는 간단한 실험 키트를 이용한 실험도 진행되고(어제는 물에 뜨는 모래였다.)
강의 후에는 질의 응답까지 제공되는 멋진 과학문화확산 사업이다.
초등학생들을 데리고 오신 부모님들도 많으셨는데 사실 초등학생 수준의 강의는 절대 아니다.
고등학생들도 꽤 있었다. 나같은 선생님들이 여러분 계신 것이다. 불금을 학생들과 같이하시는 분들...
강의가 끝나고 나오는 정독도서관 앞에서 남산 야경도, 반만 보이는 달 사진도 촬영하였다.
지하철역까지 걸어올때는 올라오는 길과 다른 길을 살펴보는 센스도 발휘하였다.
아그들은 쉴새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강 내용 중 자기가 이해한 부분을 확인하기도 하고 주변 공원이나 멋진 디자인의 공예박물관을 살펴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작년처럼 우리 학교로 강사님들을 초청해서 특강 열어주시면 안되나요? 작년에 다양한 분야의 강사님들 많이 오셔서 너무 좋았는데...” 아그들이 물었다. 나도 그러고 싶지만 예산이 없다.
작년에는 계획서를 열심히 써서 교육청으로부터 1,000만원의 예산지원을 받았으니 가능했던 일이었다.
갑작스럽게 예산을 추가로 주는 일이 가끔은 있기도 한다.
특강을 준비하면 전문가에 따라 강사비가 결정되는데 1시간 강의이면 원고료 포함하여 50만원 정도는 필요하다. 빠듯한 학교 예산으로는 불가능한 활동이다.
아그들은 한 술 더 떠서 이야기 한다.
“최재천 교수님 강의 듣고 싶은데...”
“최재천 교수님이 누구셔?”
“최재천 교수님도 몰라?”
“모르는데 이제부터 알면 되지”
이제부터 알면 된다는 녀석 말에 미소가 지어진다.
이 정도의 패기는 있어야 과학을 전공할 수 있다. 그렇다. 이제부터 하면 될 나이이다.
그런데 최재천 교수님은 특강비가 너무 너무 비싸단다. 차마 그 말은 하지 못했다.
아이들에게는 오늘 특강 내용을 세줄 요약으로 적어서 단톡에 올리라는 마지막 미션을 부여하고는 활동을 마무리지었다. 정리한 내용을 보니 꽤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성공이다.
어제는 너무 피곤해서 오늘 아침에 쓰는 이 글은
영재이야기인지, 수업이야기인지, 골목투어인지, 먹거리 탐방인지 정체성이 모호하다.
괜찮다. 이런게 융합인거다. 앞으로는 누가 뭐래도 융합의 시대이다.
오늘 활동을 같이 한 녀석들의 동아리 이름은 그렇다. 융합과학 동아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