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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과학 교사의 수업 이야기33

아마도 첫번째 절망

by 태생적 오지라퍼

올해는 스승의 날이 부처님오신 날과 같아서 휴일이었다.

그 전 날 밴드부 아이들이 <그대에게> 연습을 생각보다 잘 해와서

협연을 듣는 것으로 스승의 날 선물을 미리 멋지게 받았다고 생각했다.

오래 전 제자들이 올해 퇴직 모임을 갖자고 톡을 주기도 했고

오래된 교사 친구들끼리 자축과 격려의 메시지를 주고 받곤 했다.

늦은 저녁 톡이 왔다. 올해 졸업한 쌍둥이 영재 중 한 명이다.

쌍둥이 영재 이야기를 알고 싶으면 <내가 만난 영재 다섯번째 이야기>를 읽어보시기 바란다.


[안녕하세요, 저 OO입니다. 인사가 많이 늦었죠? 얼굴을 못 뵙고 인사드리게 되어 죄송해요 ㅠㅠ 저번에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브런치 글을 읽고 정말 감동받았어요. 고등학교 들어와보니,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제 자신을 많이 의심했던 것 같아요. 그 때 선생님이 보내주신 글을 보면서, '아! 내가 이랬던 적도 있구나!'라는 걸 깨닫게 됐어요. 덕분에 자신감을 얻고,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어요. 비록 결과가 좋진 않았지만, '해낼 수 있다'라는 다짐을 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구요. 그리고 중학교 때 선생님 덕분에 참여했던 많은 프로그램들이, 고등학교 생활에 저도 모르게 큰 도움이 되고 있더라고요. 중학교에서 선생님을 만난 건 저에게 행운이었고, 많은 가르침을 받은 것 같아요. 정말로 감사드리고, 곧 찾아뵙겠습니다! 요즘 일교차가 심한테 몸 조심하세요.]

이것보다 더 훌륭하고 멋진 선물은 없다. 그리고 그들의 앞날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소규모의 중학교를 나온 학생들이 가장 처음으로 절망을 맛보는 시기가 고1 중간고사이다.

큰 학교 사이즈에 압도당하고 잘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겁이 나고 많은 양의 과제와 학습량에 지쳐가면서

고등학교에서의 첫 번째 중간고사를 준비하게 된다.

그리고는 절망과 당혹감을 만나게 된다. 나도 그랬고 다들 그랬을 것이다.

쌍둥이 영재도 그런 경험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중간고사가 끝나고 스승의 날이 되면 중학교가 그리워지고 작년의 선생님들이 보고싶어지고

편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지는 것이다.

고등학교 3년의 시간은 학업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편하게 지낼 수 없는 시간이다. 그걸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니 중학교에서 미리 준비한 사람들은 덜 힘들고 준비가 없었다면 더 힘든 것이 당연하다.

아마 인생에서 처음으로 쓴 맛을 본 중간고사 였을거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다. 이제부터 시작이니 힘을 내면 된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내일은 과학고를 준비해보겠다는 중3 학생들과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고 다양한 정보를 찾아보고 전문가의 특강을 들으러 가는 활동이 준비되어 있다.

과학고를 갈 수 있으면 좋고 혹시 못가더라도 지금 준비하면 내년에 덜 힘들고 덜 절망해도 된다는 마음가짐을 알려주려고 한다.

공부는 누가 대신 해줄 수 없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자신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

스승의 날에 학생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아쉽게도 <고생해라. 공부해라> 이다.

미리 고생해두면 언젠가는 조금 덜 고생한다.

미리 공부해두면 조금은 여유가 생긴다.

쌍둥이 영재를 비롯한 이땅의 고등학생들이 힘을 내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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