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생적 오지라퍼 May 21. 2024

서울 골목 투어 여섯 번째

한강공원 걷기

지난 일요일 아침에는 서울정원박람회가 열리는 뚝섬 한강공원에 다녀왔다.

가끔 산책 가는 곳인데 행사까지 있다니 구경삼아 더 더워지기 전에 한 바퀴 돌아보았다.

언제든 어디서든 꽃은 아름답다. 전문가가 만든 꽃밭도 아름답고 자연이 만든 꽃무더기도 아름답다.

그런데 꽃보다도 더 내 눈에 들어온 것은 한강이었다.

햇빛에 비추어 반짝이는 한강의 물을 보면 언제부터인가 마음이 가라앉곤 했다.

한강대교와 동작대교, 마포대교, 양화대교를 걸어서 건너본 객기를 부린 날도 있지만

지하철을 타고 한강을 건너거나 한강공원에서 물을 보게 되면 아직도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내가 한강공원 산책을 즐겨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물론 그 이전에도 학생인솔로 선유도 한강공원을 간다거나

눈오던 그 옛날에 양화 한강공원 배위에서 식사를 한다거나

테니스에 목말랐던 젊은 시기에 망원 한강공원 테니스장에서 연습을 한다거나하는 일들은 물론 있었다.

1년에 몇번 되지 않았었고 그 때는 한강의 물이 내 마음속에 들어오지는 않았었다.


본격적으로 한강 공원 산책을 시작하게 된 것은 신용산에서 노들섬 공원을 다니기 시작한 것이 시작이다.

저녁을 먹거나 시간이 나면 잡생각을 없애고 꿀잠을 자기 위한 방법으로 저녁 산책을 시작했었다.

아마도 아픈 친정아버지를 요양병원으로 모시면서부터 였던것같다.

바쁜 일과 중에는 잊어버리고 있으나 저녁을 먹고 우두커니 있게 되면

말도 못하고 누워서 눈도 잘 뜨지 못하시던 아버지 생각이 절로 났다.

코로나19로 면회도 안되던 시절의 요양병원에 홀로 누워계실 아버지 생각이 떠오르면

그 날은 마음이 너무 괴롭고 잠을 청하기 어려웠다.

한강 공원을 쉬지 않고 걸으면서 “아버지 죄송해요”를 수십만번 외치고 집에 돌아오면

다리는 아프고 몸은 노곤해서 곧 쓰러져 잠이 들곤 했다.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얼마되지 않아

파킨슨 병력을 가지고 있던 동생이 코로나19와 폐렴을 거치면서 상태가 급속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동생의 쾌유를 기원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또 한강 공원을 도는 일 뿐이었다.

노들섬 한강공원이 그 동생과 함께 산책했던 마지막 장소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빠르게 걸을 수는 없었지만 손을 살며시 잡아면 산책이 가능했었다.

그래도 동생은 자신의 병세를 알았던 것 같다.

“언니. 나 사진 한 장 찍어줘.” 이렇게 이야기 했었다.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노들섬 공원 앞 육교에서 남산을 보면서 사진을 찍어줬다.

동생과 일몰과 남산이 함께 하는 사진은 아직도 내 휴대폰 속에 간직되어 있다.

나는 차마 그 사진을 찾아보지 못하고 있다. 맨정신으로는 힘들 것 같다.


반포 한강 공원을 한번 가볼까 하는 마음이 진작부터 있었으나 아직 용기를 내보지는 못했다.

몇 년전 안타깝게 그곳에서 죽은 의대생의 넋이라도 위로해보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었다.

그러나 하나뿐인 아들을 잃은 부모에게 나의 위로가 무슨 소용이 있겠나 싶은 생각도 들어서 망설이고 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아픈 동생을 생각하며 한강 공원을 걷는 나같은 사람보다

예쁜 꽃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훨씬 많기를 빌어본다.

다음 주말에는 아픈 동생을 보러가야겠다.

이제는 눈도 못 마주치고 말도 나눌 수 없고 얼굴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많이 아프지만

아마도 동생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그때 그 사진을 보여줄 수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 늙은 과학 교사의 수업 이야기35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