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생적 오지라퍼 May 25. 2024

서울 골목 투어 일곱 번째

소리와 소음의 경계

오늘은 골목 투어라기 보다는 골목 투어를 하다가 우연히 들은 이야기를 써본다.

산책을 하다보면 많은 사람들을 스쳐 지나가게 된다.

딱히 목적이 없기도 하고 있어도 중요한 것은 아닐 때가 주 산책시간이 되니

나의 걸음은 다소 느릿느릿하고 주변의 꽃을 보거나 상점들를 보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본의 아니게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리기도 한다.


며칠 전 산책길이었다. 사설 응급이송차가 사이렌 소리를 크게 내면서 지나갔다.

대학병원 근처를 지나가게 되면 응급이송차의 다급한 사이렌 소리를 자주 듣게 된다.

119일때도 있고 사설 기관의 응급이송차일때도 있다.

주로 신호 대기중이거나 차들이 정체되어 있으면 그 소리는 더 크게 들리는 것 같기도 한데

과학적으로 본다면 소리는 파동의 일부이고

우리에게 접근할수록 파장이 짧아져서 나에게 가까이올수록 그 소리가 커지는 것이 맞다.

응급이송차를 타본 경험이 많은 나는(친정 아버지가 여러 번 쓰러지셨었다.)

누군가 그 차에 탄 환자가 많이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는데

옆에서 강아지를 품에 안고 우아하게 걸어가던 부부 이야기가 들렸다.

“ 저 소리는 너무 시끄러워. 작게는 안되는 걸까?”

“ 한 사람을 살리자고 다른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시끄러워서 불편해도 되는 걸까?”

“ 법으로 어떻게 안되나? 신고하고 싶다.”

“ 사설응급차는 응급 환자가 안 타고 있어도 저리 시끄럽게 길을 양보받아서 다닌다던데...”

고개를 들어 부부를 물끄러미 한 번 쳐다보게 만드는 대화였다.

부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참으로 잘 만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쩜 그렇게 관점과 논조가 비슷한지 그렇게 만나니 잘 사는 것일게다 싶었다.

살면서 응급이송차에 타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극한 상황이니 그 차에 탄 것일게다.

소리를 작게해도 지나가던 차들이 피해주고 양보해준다면 소리를 낮추는게 맞겠지만,

양보해주지 않거나 미처 깨닫지 못한 차들도 있을 것이다.

두 부부 말대로 사이렌을 틀지 않는다면 응급이송이 가능한걸까?


오늘 강남 한 복판에서 우아한 점심과 미술 관람을 하고 귀가하는 길이었다.

20여년전 지도교사와 교실습생으로 만난 인연이 그 이후로도 이러저러하게 이어져서

두 부부에게 점심 대접과 아트쇼 갤러리 티켓도 받아서 우아한 문화생활을 즐기고 횡단보도 대기중이었다.

건너편에서 비싸 보이는 외제 오토바이가 굉음을 내면서 급정거를 하더니

부릉부릉 매연을 내뿜으면서 크게 댄스곡을 틀어댔다.

그 부릉부릉 소리가 사설응급차 사이렌 소리 파동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뒤로 뿜뿜 나오는 매연은 노후된 버스에서 나오는 양과 맞먹었다.

크게 들어놓은 댄스곡은 횡단보도를 나이트클럽인줄 착각하게 만들 정도였다.

마침 유모차를 밀고 지나가는 부부의 속닥거리는 이야기가 들렸다.

“아이고 진상. 신고해야겠다.(나도 그럴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잠든 애기가 깜짝 놀랐네. 왜 저러는 걸까?”

“ 이런게 바로 소음이지 뭐야. 정말 나쁘다.”

그러나 신고할 틈도 없이 더 큰 굉음과 노래와 함께 오토바이는 사라졌다.


두 부부 대화의 주된 매개체는 소음이다. 그러나 관점은 많이 다르다.

요즈음 가장 심한 소음의 문제는 층간소음이다. 해결이 쉽지는 않다.

주로 어린아이들의 쿵쿵거리고 뛰는 소리와 울음소리가 그 주된 문제가 된다.

특히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는 어느 장소에서는 고역이고(비행기에서는 정말 참기가 힘들다.)

어느 장소에서는 다소 이해가 된다.(병원은 누구에게나 무섭다.)

그러나 울고 싶은 아이가 어디 있으며 울리고 싶은 부모가 어디 있을까?

조금은 참아주는 일이 꼭 필요하다. 그러나 그 한계가 어디일런지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다행히 나는 층간소음은 겪지 않았으나 측간소음은 시달려봤다. 옆집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새벽에 귀가하는 남편과 매일 큰 소리로 싸우는 옆집 아내를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일은 참으로 민망하였다. 꼭 아는체를 하고 두 부부가 환한 얼굴로 인사를 하곤했다.

소리와 소음 출발은 같은 과학 현상이지만 우리의 삶에 전혀 다르게 작용한다.

늙을수록 청력이 나빠지는 것도 맞지만 소리에 예민해지는 것도 맞다.

같이 사는 세상에 어려움이 많이 있을 수 밖에 없지만 소음이 되지 않게 소리를 내는 것은 에티켓의 문제이다.

골목투어를 하다보면 이렇게 의도치 않게 생각투어로 마무리 될 때가 있다.

작가의 이전글 늙지않은 혼밥요리사의 비밀 레시피 48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