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하면 난감한 것들

이사 안가고 싶다.격렬하게...

by 태생적 오지라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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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이사를 자주하게 되었다. 간략하게 이야기하자면 돈 때문이다. 집값이 너무 올라서 집이 없는지 오래된 나는 차마 집을 살 생각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고 집값에 맞추어 이곳 저곳을 유랑하는 중이다. 서럽고 슬픈 일임에 틀림없지만 새로운 동네에 적응하고 알아가는 일도 마냥 나쁘지는 않다고 마음을 추스르고 있다. 그렇게라도 마음먹지 않으면 너무 울적한 일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하면 난감한 것들이 많다. 갑자기 아플 때 찾아갈 믿을만한 병원이 어디인지 알 수 없다거나, 나의 볼품없는 머릿결을 만져줄 헤어숍을 근처에서 구하는 일 등이 그런 것이다. 장보기야 요새는 온라인 주문 등이 많아서 그러려니 하지만 착한 가격이지만 한 끼 식사가 훌륭한 곳, 운동 겸 구경 겸 산책코스로 마땅한 곳 이런 것들은 그 동네 토박이가 되어야 알 수 있는 것들이다.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 살던 곳은 신용산역 주변이었다. 집값의 급등으로 4년 만에 그 곳을 떠나야만 했지만 집 앞 5분 거리 안에 모든 것이 다 있는 살기편한 곳이었다. 그곳과 비교하여 삶의 질이 비슷한 곳을 찾기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이사 온 곳은 15분 내외에 신용산 지역보다 분위기는 떨어지지만 값은 싼 많은 것들이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주말에도 문을 여는 젊은 부부가 하는 과일 야채 가게(양은 많고 신선하며 값은 싸다), 줄서서 먹는다는 5개에 6,000원짜리 만두가게(만두 하나의 크기가 엄청 크다), 신용산역에서는 10,000원이던 비슷한 수준의 콩나물국밥이 5,500원인 식당도 찾았으니 이제 아파트 뒤편에 새로 지어지는 건물에 병원만 들어온다면 불편한 일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얼마 전부터 아파트 뒤편 옛날 건물에 나랑 비슷한 연배의 원장님이 있는 미용실에서 염색을 하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 자주보던 안쪽으로는 생활할 수 있는 방이 있는 구조의 오래된 경력의 원장님은 차도 권하고 이야기도 서스름 없이 하면서 착한 가격에 이제는 볼품없어진 내 머리를 만져주었다. 며칠 전 염색을 한 날이었다. 한 시간쯤 시간 내서 가르마 주위의 머리가 비어져 보이는 부분을 파마 말아보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제안하셨다. 그리고는 내 뒷머리를 거울로 보여주셨는데 아뿔싸, 뒷머리 가운데 가르마 주위는 다 헤어진 옷을 입고 가슴팍이 보일 것만 같은 상태였다. 지금껏 신용산역 주위의 크고 멋진 헤어숍을 그리 다녔는데도 아무도 내 뒷머리 상태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준 사람은 없었다. 아마도 내가 부끄러워할 것 같아서이던가, 어떤 조처도 백약무효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물론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을 수 있지만(원장님 말씀이다) 그곳을 보여주고 어떤 시도를 하려는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돈도 끝내 받지 않으셨다). 오늘 없는 시간이지만 기꺼이 내 뒷머리 보수에 참여했다. 그리고 거울 속의 내 뒷머리는 하얀 고속도로가 많이 가려져 보였다. 머리를 새로 감고 나면 그 길이 다시 보일지언정 신경을 써주는 원장님을 만난 것만으로도 이사하면 난감했던 것 중의 한 가지를 해결한 기쁨이 더 컸다. 이사해서 느낄 수 있는 난감한 것들을 해결해나가 보는 것. 그게 버티고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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