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의미가 아니다.
음식을 같이 먹는다는 것 - 사소하지만 때로는 매우 중요한 과정 -
음식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추억을 공유한다는 중요한 뜻임을 이 나이가 되니 절감한다.
엄마가 가시고 3년차, 아버지가 가시고 1년차인 요즈음 나와 막내 동생의 주된 대화는 “그거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음식인데” “그거 엄마가 해주던 건데.. 그 맛이 안나네” “아버지랑 엄마가 맛나게 드시던 그 때가 생각나네” 이런 내용이다. 먹는 음식마다 부모님과의 추억이 깃들여있어서 음식을 먹으면서 되새기는 일이 행복하기도 하고 많이 아프기도 하다. 이틀이나 계속 비가 내리는 오늘 아침에는 신김치로 꽁치김치찌개를 끓였다.
그 당시에는 참치캔이 등장하기 훨씬 전이었으므로 김치찌개는 두부를 넣거나 꽁치를 넣거나 그것도 아니면 멸치와 콩나물을 넣고 희멀건하게 오래 끓여 국처럼 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이 국이 상에 올라올 때쯤은 생활비가 다 떨어져갈 때였던 듯하다. 코다리조림은 아버지가 좋아하신 음식이다. 아버지는 약간 짜다 싶게 간이 진해야 맛있다고 하시는 분이셨다. 밥반찬으로는 딱이었던 코다리조림은 제대로 말린 것이 아니면 생선 비린내가 나기도 해서 그때의 나에게는 비호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식당가를 지나가다보면 눈에 띄는 메뉴가 되었다. 내가 해먹기는 손이 많이 가고 조금씩은 팔지 않는 코다리의 특성과 집에서 나는 생선 냄새를 지독하게 싫어하는 아들 녀석 때문에 코다리조림은 외식 메뉴로서만 딱이다. 며칠 전에는 시어머니가 주신 오래된 김장 김치를 빨아서 들기름에 조물조물 볶아 먹었다. 미국 입맛인 조카 녀석이 웬일인지 잘 먹어서 즐거웠다. 김치를 빨아서 볶던지, 전으로 붙이던지 하는 일은 김장 김치가 다 떨어져 갈 때쯤의 단골 메뉴였다. 두부와 함께 먹는 빨간 볶음 김치도 매운 국과 함께 먹는 하얀 볶음 김치도 나름의 매력이 있다.
넉넉하지 않은 딸만 넷인 우리 집의 식사는 매번 그것이 그것이었다. 김치찌개 아니면 된장찌개. 답정너인 우리 집의 저녁 식사 메뉴였다. 그도 그럴것이 네 아이의 도시락을 매일 싸야했고 경상도 출신의 미식가인 아버지 입맛에 맞추기도 힘들었고 무엇보다도 생활비가 항상 모자랐던 충청도 출신의 엄마는 몹시도 힘드셨을거라는 걸 이제는 안다. 그 힘듬을 몰랐던 어린 시절의 나는 매번 멸치조림과 어묵조림, 김치뿐인 도시락 반찬에 화도 났고 계란 후라이와 소고기 장조림이 있는 친구의 도시락을 부러워하기만 했다.
쌀과 김치만 있으면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신 듯 엄마는 김장에 진심이셨고 엄청 많은 양의 김치를 매년 담았고 그것을 함께 준비한 어린 나는 김장 담기의 무서움과 어려움을 일찍 알게 되었으며 커서는 김치 담을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나 김치를 사먹는 것이 너무도 당연해진 요즈음 나는 조금씩 김치를 담는다.
엄마랑 김치 욕심이 많은 것은 비슷하나 나는 김치양이 아니고 다양한 김치 종류를 가지고 있는 것에 욕심이 있다. 배추김치, 파김치, 얼갈이, 총각김치, 열무김치, 깍두기, 순무김치, 갓김치, 부추김치 등을 조금씩만 담아두고 맛나게 먹는 것이 나의 김치 사치 생활이다. 엄마가 보신다면 흉 보실 것이 뻔하다. 조금 담으나 많이 담으나 들어가는 돈이나 수고는 비슷하다면서 눈을 흘겨 보실게다. 그런 엄마의 눈 흘기는 모습을 꿈에서라도 보고 싶다. 엄마가 없던 날 간이 밍밍한 나의 초보 음식을 맛보시고는 이렇게 맛없는 것을 먹고는 못산다고 호통 치시던 우리 아버지의 큰 목소리도 한번만 들어보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안방 아랫목에 모여 함께 밥을 먹던 그 시절이 무엇보다도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