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에도 급이 있다.
나는 짝사랑 전문가이기는 하나
금사빠는 아니다.
둘은 결코 동의어가 아니다.
나름 데이터 수집과정을 거치고
고심고심끝에 대상을 확정짓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고등학교 시절에는 진정한 의미의
짝사랑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열정과 몰입의 시기와 강도가 부족했다.
짝사랑에도 급이 있는거다.
시내 한복판 고등학교까지
같은 곳에서 만원버스를 타야만 했던
통학 동기생 중에서 키 크고 마른 스타일의
서울고인가 배재고 오빠가
눈에 잠시 들어오기는 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주구장창 키 크고 마른 스타일을 선호한다.
연하에게는 눈이 가지 않고.
힘든 아침에도 말끔했던 스타일이 마음에 들었으나
만원버스에서 같이 부대꼈을뿐
이야기 한번 나눈적 없으니
짝사랑은 절대 아닐게다.
표본에서 제외하는게 마땅하다.
당시 다니던 교회 잔치에서
두 명의 사회자를 모셔왔었는데
한 명은 그저그저 그런 외모에 위트가 있었고
한 명은 조금은 상큼한 외모에 조용조용 했다.
아마도 위트가 있었던 친구에게 호의를 표현했더라면
가까와졌을지도 몰랐을텐데
나는 조용조용 친구가 더 눈에 들어왔고
딱히 호의를 표현하기도 전에 그 행사는 막을 내렸으니
이도 저도 뭔 썸씽이 일어난것은 없다.
그때는 썸타는것을 썸씽이라 일컫던 시절이다.
역시 눈에만 들어왔을 뿐
우연히 스치기를 잠시 기대했을 뿐
짝사랑 반열에 올리기에는 한참 부족하다.
내 고등학교 시절은 그렇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니 대학에 그것도 여대에 가서
남자친구 선택에 기준이 정교하게 정립되지 못했던것이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