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지않은 혼밥요리사의 비밀 레시피 63
모든 것은 따라하기에서 시작된다.
며칠동안 먹거리에 대한 글을 쓰지 못했다.
제대로 먹지 못했다는 뜻이다.
일이 많고 몸이나 마음이 힘들면 제일 먼저 포기하게 되는 것이 음식하기이다.(나는 그렇다.)
대충 먹고 시켜 먹고 사먹는 것이 훨씬 편하기 때문이다.
정신이 차려지고 컨디션이 올라오는지는 음식할 생각이 드는가로 가늠할 수 있다.
컨디션이 꽝이면 그런 생각 자체가 들지 않는다.
어제 오후부터 자다 깨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고 오늘 아침이 되니 놀랍게도 반찬할 생각이 절로 들었다.
사실 먹을 것이 하나도 없기도 했다.
나는 냉장고 꽉 채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전기 절약 때문이라기 보다는 해야할 일을 안하고 미뤄둔 기분으로 음식 재료를 보는 일이 싫어서이다.
어젯밤과 새벽사이 또 많은 비 때문인지 어묵탕을 먹고 싶었다.
두부, 어묵, 양파를 넣고 심심하게 만든 어묵탕에 달걀 두 개를 삶아 반씩 잘라 넣었다.
이것만 먹어도 최소 영양분 섭취는 가능하게끔 말이다.
그런데 발동이 걸린 요리 본능은 멈추지 않았다.
원래 한번 발동 걸리기가 어려운 것이지 그 다음부터는 쉬운 법.
두부 반개 남은 것은 구워서 신김치 볶은 것과 매칭을 시켜두고
오랜만에 소시지와 베이컨도 구워놓고
며칠전에 만들어놓은 야채 피클도 조금 꺼내고
다소 헤비한 조식을 먹었다.
그리고 후식은 요사이 최애 과일인 황도 복숭아.
올해 아직 포도는 못먹어봤으니 이제 하나 남은 복숭아를 먹고는 포도를 사봐야겠다 생각했다.
그리고는 아침 먹는 중 <서진이네2>를 보고 있으려니 매운갈비찜을 해먹어야 하나 생각이 드는 것을 보니
이제 과학캠프때 몰빵한 에너지가 모두 보충된 것임에 틀림없다.
점심은 연천에서 먹었던 비빔국수를 흉내내보려 한다.
별다른 준비물이 없어도 되는 심플한 비빔국수이다.
단지 자작자작한 양념이 유일한 키 포인트인 비빔국수가 왜 그리지 맛난 것인지 따라해보려 한다.
교육은 모두 따라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과학 교과도 그렇고 음식하는 것도 그러하다.
그러보보면 세상의 모든 일이 그러하다.
따라하다가 어느 순간 자신만의 독특한 레시피가 정립되고 따라하던 사람의 실력을 넘어서기도 한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무엇을 따라할 것인가 롤모델을 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은퇴 후 나의 삶의 롤모델을 누구로 삼을 것인가? 그것이 나의 고민이다.
같은 길을 쭈욱 가는 김성근 감독님으로 롤모델을 설정하기에는 내가 너무 버거울 것 같다.
그 분의 체력과 정신력을 따라하기에 나는 너무 저질 체력에 새가슴 멘탈의 소유자이다.
버거울땐 버거를 먹어야 한다.(이것은 최강야구 열혈 시청자만 아는 고급 개그이다.)
나의 마지막 여름방학을 즐겨보자.
날이 더운 것 쯤이야 비가 많이 오는 것 쯤이야 버틸 수 있다.
맛난 것만 먹는다면 말이다.
이 글을 쓰고 기어이 매운갈비찜을 하려고 등갈비를 주문했다. 올해 첫 포도와 복숭아, 콜라도 함께 말이다. 미뤄두었던 빨래는 아직도 건조중이다. 여름방학 동안의 시간은 느리게 간다.
점심은 비빔국수를 먹긴했으나 심플한 그 맛을 따라잡지는 못했다.
고명은 양배추,당근,피망,갈아서 볶은 소고기와 볶음 김치였다.
냉털과 잔반 처리에 방점을 찍은 효율성 갑의 비빔국수였다.
매운 등갈비찜은 칼칼하게 매웠다. 아들 녀석은 좋아라했으나 맵찔이인 나는 같이 넣은 감자를 주로 먹었다. 남은 양념으로는 내일 밥과 대파 작게 썰어넣고 비벼먹으면 딱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