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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골목 투어 열 일곱번째

서울이 아니고 섬 이야기

by 태생적 오지라퍼

방학이 되니 SNS에 지인들의 여행 사진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학생 자녀를 둔 사람들은 방학때가 아니면 가족끼리 여행할 시간이 없다.

자녀가 없어도 교사들은 방학 아니면 여행갈 여유를 갖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가장 비싼 시기에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교사라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올 여름 방학은 내 교사 일생 중 가장 긴 여름방학이다.

오래된 학교라 창호와 화장실 공사가 예정되어 있다.

좋아할 것은 없다. 여름 방학이 길면 겨울 방학이 짧은 법.

수업해야할 기간은 똑같기 때문이다.


긴 여름방학에 나는 외국에 나가지 않는다.

퇴직하면 경비가 싼 시기에 나갈 수 있는데 꼭 비싼 지금 갈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있고

평소에도 외국 나가는 것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하루 하루 색다르고 의미있는 무언가를 하고 싶을 뿐.

그것이 곧 해외 여행은 아니다. 국내에도 못 가본 곳이 너무도 많다.

특히 섬 지역은 배멀미가 심한 관계로 엄두를 내지 못한다.

버스 멀미도 하는데 배멀미는 안날 수가 없다. 내 신체 시스템으로는...

이런 내가 배멀미를 감수하고 가본 곳이 있다. 제주의 섬들이다. 비양도, 우도, 가파도...(마라도는 갔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비양도는 지질답사를 목적으로 들어갔었다.

서울대학교에 우수 과학교사 파견을 하고있던 동기들하고 였다.

1년동안 서울대에서 강의를 듣고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전문 역량을 높여주고자 만든 프로그램인데

아마도 내 인생 중 가장 행복하고 근심 걱정 없었던 시기라고 기억된다.

그 때 만났던 지구과학교사 6명은 나의 중요한 인생 동반 네트워크가 되었다.

비양도행 배에는 목적이 딱 두 종류인 사람들이 탔다.

등산 혹은 낚시, 그 중에서 우리는 이도저도 아닌 복장으로 이방인처럼 배에 탔다.

내려서는 낚시 포인트도 아니고 등산 입구도 아닌 해변가로 가서

무언가를 하고있는 모습이 수상했는지 신고가 들어갔단다.

지구과학교사이고 화산기원 암석을 관찰하고 있다하고 신분증을 보여주고 웃으면서 마무리 되었었지만

경찰의 검문과 다른 승객들의 신고정신에 아찔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비양도는 모 드라마에도 나오고 했던 곳인데 우리는 왜 멋진 곳을 더 둘러볼 생각을 못했었는지

아하 용암만 보고 사람 발자국 화석지만 본것인지

그때는 교과 영역의 역량만을 생각하던 젊은 나이였음을 이제서야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우도는 철저하게 관강객 모두로 들어갔던 섬이다.

남들처럼 우도 땅콩을 먹고 제주식 된장찌개를 먹고 사진을 찍고

그래서인지 우도에 대한 강렬한 기억은 별로 나지 않는다.

그래도 한 번 다녀왔다는 성취감과 기억이 나는 것이 어디냐

그것조차 까마득한 방문지도 많다. 이 나이가 되고 보니...


가파도는 가장 최근, 청보리가 필 무렵인 시기에 들어가서인지 기억이 또렷하다.

그 때 나는 영재교육원 파견교사였고 주말에 수업을 하니 주중에 대체 휴가를 사용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멋진 후배가 같이 제주를 가지 않겠냐고 고맙게 제의를 해주었고 즉시 따라나섰다.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어디 같이 가준다면 땡큐일 뿐이다.

가파도를 들어가는 배에서는 아니나 다를까 심하게 배멀미를 했었다.

내가 왜 여기를 가자고 했을까 후회막급이었다.

그런데 눈에 들어온 청보리밭이 그 심했던 배멀미가 싹 가라앉을 정도로 멋졌다.

섬을 한바퀴 천천이 돌면서 자연에 심취한 시간을 보냈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먹는 시간도 아까울 정도로 멋진 풍광이었다.

오래토록 눈에 담아서 지금도 청보리밭 사진을 보면 그때가 기억난다.


오늘 아침 일찍 친한 후배 장학사가 사진과 영상을 단톡에 올렸다.

울릉도에서 해가 뜨는 광경을 찍은 것이다.

독도까지 들어가는 연수에 참여한 모양이다.

나도 그 연수 공문을 보았지만 신청할 생각은 차마 하지 못했다.

나의 배멀미 이력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큰 배에서도 나타나는 신기한 배멀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릉도와 독도는 내 전공 영역으로보나(지구과학적인 서사가 대단하다.)

풍광으로보나 한번쯤은 도전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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