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유감

by 태생적 오지라퍼

살다가 문득 문득 느끼는 단상 쓰기, 인스타에서 마음에 드는 그림 고르기, 그날의 식단 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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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8. 연어포케, 소금빵, 부추부침개, 두부김치

이사 온 집의 화장실 거울은 너무나도 잘 보인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쭈욱 일관되게 하향곡선을 그려온 내 시력이

갑자기 좋아진 것은 절대 아닐 테니

이것은 거울의 성능과 조명의 힘임에 틀림없다.

삐져나온 콧털 하나도 보이고

언제부터인가 거뭇거뭇해진 코 밑 수염자리도 보이고

(여자도 코 밑에 수염이 나는 자리가 있는가보다. 나만 그런 건가? 젊어서는 못느꼈었는데...)

심지어 산타클로스처럼 하얗게 되어버린 눈썹 두 어 개도 보인다.

눈썹을 그리지 않으니 이건 족집게로 뽑아야만 하는 것인가?

아래 이빨의 치석은 치과 스케일링을 가야할 날이 머지않았음을,

비죽이 솟아오른 흰 머리는 염색할 날이 지났음을 알려준다.

시력도 좋지 않은 내 눈에 이리 보일 정도면

다른 사람들 눈에도 다 보인다는 뜻인데

다들 알면서도 보았으면서도 눈감아 주고 있는 걸게다.

아무도 원치 않았으나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날들이 이렇게나 길어지면서

얼굴에 그다지 민감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았다.

마스크 덕분에 나의 늙음을, 주름을, 게으름을 화남까지도 감추고 살 수 있었다.

마스크를 벗는 그 날이 빨리 오기를 희망하면서도

막상 그 날이 오면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것들 때문에

많이 당황스러울 것 같은 그런 맘이다.

그나 저나 화장실 조명을 조금 어둡게 고쳐볼까나 고민해본다.

너무 드러나는 나의 늙음과

점점 닮아가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모습이 그 거울에 있다.

거울보기가 겁나고 두려운 이유.

새해가 예전처럼 신나고 파이팅이 생기지 않는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할 일이 많이 남아있는 것 같은

신랄한 팩트 체크를 도와주는 화장실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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