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영재 일곱번째 이야기
영재는 타고나는 것일까? 만들어지는 것일까?
어제는 오랜만에 모 대학교에서 운영하는 영재교육원 여름 캠프에서 특강을 했다.
모든 영재교육원은 국가 예산으로 거의 무료로 좋은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영재교육분야는 현재 인기가 있는 분야가 아니다.
가장 큰 것은 영재교육 이수 사실을 생기부 등에 기록할 수 없어서 진학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과
차라리 학원을 다니는 것이 시간상으로 유리하다는 학부모님들의 판단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영재교육분야의 끝나지 않는 논점중 한 가지인 영재는 타고나는 것이라는 생각때문일 수도 있다. 타고나는데 굳이 영재교육을 시켜야 하나에 대한 의문을 갖는 학부모님도 계시기 때문이다.
어제 수업은 중등 과학 부분이었고 중 15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오전 수업 연강 3시간은 과학하는 방법에 대한 실습이었다.
과학은 주변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에서 출발하며
주제가 결정되면 다양한 각도에서 데이터를 수집하여 기록하고
(사소한 데이터라도 무시하거나 임의로 변경하거나 간과하면 안됨을 강조하였다.)
그 데이터로부터 과학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것들을 조별로 연습하는 과정이었다.
첫 번째로는 상자에 알수 없는 데이터를 제시하여 그 데이터에서의 공통점을 찾아내는 미션이었고
두 번째는 5종류의 과자(**깡 종류로 통일)를 관찰하여 알게된 사실을 정리하고
조별로 과학적인 기준을 설정한 후 분류해보고 다른 조의 기준을 찾아보는 미션이었다.
모두들 열심히 참여하고 제시한 활동의 의미를 잘 이해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오후에는 ChatGPT를 활용한 글쓰기, 그림그리기, 그래프그리기, PPT 만들기, 음악만들기, 영상만들기를 진행하였다.
특히 주제를 특정하지 않고 자유주제로 산출물을 만드는 활동을 하면 학생 개개인의 현재 관심 주제를 금방 알아볼 수 있어서 개개인의 특성을 파악하기에 좋았다.
내가 가장 자주 검색하는 내용이 <최강야구>인 것과 같은 이유이다.
관심과 사랑은 숨길래야 숨길 수가 없는 법이다.
중1 나이답게 걸그룹이나 스포츠 스타, 애니메이션등에 대한 주제도 있었고
특정 과학 분야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는 학생들도 있었다.
특히 시작부터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지질학과 고생물학 부분에 높은 수준의 역량을 나타낸 영재 2명이었다.
외부 강의를 나갈 경우 나는 시작 시간보다 30분 정도 일찍 도착한다.
강의 장소의 컴퓨터 환경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활동 자료도 다운받아 두고 조별 좌석 배치 및 활동 준비물 점검도 필요하다.
그런데 일찍 도착한 학생 2명이 있었다.
똘망똘망한 외모 못지않게 붙임성도 좋아서 나를 보자마자 필통속에 보관되어 있는 자신들의 귀중품을 자랑스럽게 보여주기 시작했다.(사진 찍는 것도 허락해주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구하기도 쉽지 않은 이빨 화석 종류였는데
아주 높은 수준의 각 종 화석에 대한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는 고생물학 카페와 화석 구입처도 알려주고
관련 논문을 작성하는 교수님들의 최신 연구 현황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었다.
언제부터 화석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물어보았더니
나의 예상대로 4~5살에 공룡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어린이들이 과학관에 오면 가장 좋아라 하는 것은 공룡 전시물이다.
장난감 중에서도 공룡 장난감은 스테디샐러이다.
그러나 그렇게 시작한 지질학과 고생물학에 대한 관심은
대부분 초등학생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지기 시작한다.
다른 관심거리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것이 축구나 야구가 될 수도 있고, 걸그룹이나 아이돌이 될 수도 있고
다행히 자연과학 부분이라면 천문학이나 양자역학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두 명의 친구들은 4~5살부터 중학교 1학년때까지
줄곧 고생물학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고 있는 요즈음 보기 드문 찐 영재였다.
영재성의 큰 특징 중 하나인 과제집착력이 최고조로 발현된 경우라고 하겠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오타쿠나 덕후라는 시선으로 볼수도 있겠으나
진정한 의미의 영재는 한 분야에 미치지 않고서는 완성되기 싶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물론 이 두명의 학생들이 이후에 다른 영역으로 관심분야가 변경될 수도 있겠으나
그래도 지금까지 한 분야에서 수행한 탐구역량이 어디로 도망가는 것은 아니다.
탐구하는 과정도 습관과 경험이 중요한 법이고 학자들은 그것을 연구방법론이라 한다.
이 학생들은 벌써 연구방법론을 한 학기 이상 수강한 셈이다.
이런 영재들에게 내가 해줄 이야기는 딱 한가지이다.
멋지다. 열심히 해라, 그리고 최신 연구들을 자주 참고해라, 나만의 연구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의 연구 경향도 꼭 참고해라. 다른 사람의 연구 방법을 따라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내 것과 비교해보는 작업은 꼭 필요하다, 너무 나만의 것을 고집하다보면 그것은 궤변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두 영재들은 타고난 영재일까?
오늘 하루의 만남으로는 그 답을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만
타고난 영재성이 있더라도 발현하여 능력을 발휘하려면 이후에 끊임없는 자극과 활동이 필요하다.
적절한 환경 구성과 자극은 어느 분야에서도 꼭 필요한 것이고 그 몫을 수행하는데는 부모님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오전, 오후 총 6시간의 연강이라 힘은 들었지만 뿌듯함을 주는 하루는 이렇게 영재들을 만났을때이다.
그들에게 무언가를 알려줄 수 있다는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가 느끼는 충만함 중 한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