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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생적 오지라퍼 Aug 22. 2024

아버지와 아들과의 그 사이 어디쯤엔가

나를 닮았다는 것이 느껴지는 순간

나는 딸이지만 아버지를 더 많이 닮았다.(미인인 엄마를 닮았으면 인생이 바뀌었을래나?)

아빠 닮은 딸이 더 잘 산다고 전해 내려오는 말은 아마도

아빠를 닮아서는 이쁠 확률이 떨어지므로(아무래도 엄마를 닮는 것보다는) 위로차 하는 말 인 듯 싶다.

순전히 내 경우에만 적용되는 말이다.


먼저 커다란 얼굴 윤곽이 닮았다.

커다란 얼굴 윤곽은 사실 친할머니를 닮은 것이다.

내가 유치원 다닐 때 돌아가신 친할머니는 기억 속에 별반 없지만

제사 때마다 보았던 사진 속에서 얼굴이 네모나게 크고 광대뼈가 튀어나온 장군 기골의 할머니가 남아있었다.

대조적으로 친할아버지는 얼굴도 작고 체형도 작으신 편이셨다.

아버지는 친할머니를 닮았던 것이고

나도 친할머니 유전자가 크게 작용한 것 같은데

나의 큰 얼굴 윤곽은 평생 나의 외모에 자신감을 가질 수 없게 만든 첫 번째 요인이었다.

그리고는 손과 손톱이 닮았다.

나는 이상하게 사람을 볼 때 손톱을 보는 경향이 있다.

손톱이 넓고 단정한 사람을 좋아한다.

아버지의 손톱이 그랬다. 고모 손톱 모양도 똑 같았다.

그런데 나는 아버지를 닮았던 그런 손톱을 어렸을 때 자꾸 물어뜯었더랬다.

초조하거나 긴장하거나 자신이 없을 때는 여지없이 손톱을 물고 있었다.

그랬더니 아버지와 닮았었던 그 손톱 모양이 조금씩 변하더니

지금은 엄지 손톱을 제외하고는 다른 형태가 되어버렸다.

물론 지금은 손톱을 물어뜯지 않지만 아직도 손톱을 깍을때면

문득 문득 아버지의 멋졌던 손톱이 생각나고

아버지가 생각날 때면 유일하게 이쁘다고 칭찬해주셨던 나의 손을 쳐다보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버지를 가장 닮은 점은 일을 처리하는 스타일이다.

아버지는 항상 약속에 30분 일찍 도착하게 집을 나섰고(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약속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셨다,)

Plan A 말고 B, C까지는 항상 생각하면서 일을 처리하라 하셨고

예상되는 일들은 항상 미리 준비하라 하셨다.

어렸을 때 나는 너무 서두르는 아버지가 이상했고

자꾸 나의 계획을 물어보시는 압박 질문들에 대답하느라 힘겨웠고

일어나지도 않을 것 같은 일들을 대비하라 하시는 말씀이 잔소리 같아서 싫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일 처리하는 방법이 아버지와 꼭 닮은 나를 발견하고

그 내용을 아는 동생도 놀랍고 소름끼친다고 이야기한다.

이것은 교육을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닌 듯

유전이라고 DNA의 힘이라고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버지와 닮은 것보다는 덜 하지만

나의 하나뿐인 아들 녀석과 닮은 점이 조금은 보인다.

잦은 두통과 목감기에 자주 걸린다는 점은 절대 안 닮았으면 했는데 애석하게도 비슷하다.

공으로 하는 스포츠를 좋아하는 점, 음악을 한번 들으면 금방 기억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점, 편안한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이 별로 없는 점 등은 교육으로 전수된 것이 아니지만 아들 녀석과 나의 비슷한 점이다.

결혼할 여자를 보는 눈도 비슷한 듯은 하지만(지금까지를 보면)

비슷하지 않더라도 그 부분은 전적으로 아들의 의견에 맞출 것이니

빨리 누구라도 데리고 왔으면 한다.


그런데 요새 드러난 아들 녀석과의 의견 차이는 내년부터 독립할 아들 녀석의 거주지 선정에 대한 것이다.

나는 직주근접을 선호한다.

출장이 많고 피곤한 아들 녀석이 퇴근 후 빨리 집에 와서 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아들 녀석은 서울 외곽에 위치한 회사에서 조금은 멀어도 서울 중심에서 살고 싶다고 한다.

생활만큼은 외곽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란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지만 편리함의 문제이기에 잘 생각해보라고 하였다.

돌아가신 아버지라면 자신 있게 본인의 생각을 밀어붙이셨겠지만

나는 아들의 생각을 존중하는 멋진 어머니가 될 거라며 마음을 달래본다.

아버지 스타일과 아들 스타일의 그 중간 어디쯤에 내 스타일이 있다.

살아계시다면, 정신이 명료하시다면 여쭈어보고 싶다. 아버지의 생각을... 아마 내 의견과 비슷하실게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아버지가 그리운 날들이 이어진다.


(그런데 이 글을 쓰고 얼마 뒤 갑자기 아들 녀석이 직주근접을 가겠다고 마음을 바꾸었다.

왜 인지는 절대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요새 만나는 여자가 생긴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든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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