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이 되니 공식적으로 이야기할 일이 별로 없다.
출장가는 아들(출장 안가더라도 지극히 공식적인 이야기밖에는 하지 않는다. 본인이 제일 싫어하는 단어가 마마보이이다. 엄마에게 살갑게 이야기하면 마마보이인가?)과의 이야기는 대부분 톡으로 이루어진다.
지방에 있는 남편은 더 하다. 톡도 잘 보지 않는다. 무소식이 희소식임을 굳게 믿는 유형이다.
이러다가 입 안에 곰팡이가 피게 생겼다.
평소에는 쉴 틈없이 이야기를 하는 직업이니 더 그렇게 느껴지는가보다.
톡도 별로 오지 않고(주로 일 이야기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방학 3일만에 내가 좋아하는 스포츠 유튜브는 대강 섭렵했고
아무리 살펴보아도 내 주변에는 관종 고양이 설이 밖에는 없다.
설이는 나름 매뉴얼대로 규칙적인 삶을 사는 중이다.
아침 일찍 나를 깨운다.
꼬리로 얼굴로 부대어서 나를 깨우고야 만다.
설이 궁디팡팡을 다섯 번쯤 해주고 나면 나의 잠이 깨기 마련이다.
일단 나를 깨우고 나면 세수하라고 화장실 앞 문을 긁어대며 재촉을 해댄다.
그리고는 세수하는 나를 욕조에 앉아서 구경한다.
잘하는지 못하는지를 살펴보는 잔소리쟁이 우리 엄마 모습이다.(이제 엄마 목소리도 생각이 잘 나지않는다.)
그리고는 자기는 다시 잠에 빠져든다.
요새는 주로 차가운 곳을 즐겨찾는다.
식탁 아래나 책상 아래 어떨때는 침대 아래쪽에 숨어서 아침잠을 즐긴다.
출근하는 내가 보는 아침 일상은 여기까지이다.
요새 출근을 안하는 내가 설이 눈에는 많이 이상한가보다.
아침잠에서 자다 깨다 하면서 나를 쳐다본다.
너 왜 아직도 거기있니? 하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눈빛으로 말이다.
그러고는 온 집안을 돌고 돌면서 신기한 것을 찾는다.
가장 좋아하는 것은 택배 온 상자이고 가장 질색하는 것은 로봇 청소기이다.
가끔씩 날파리가 집 안으로 들어오면 난리가 난다.
또 멍하니 쳐다보는 창밖에서 새가 나무에 앉아있으면 더 난리가 난다.
지난번에 살던 아파트는 23층이라 창밖으로는 보이는게 구름밖에 없었을터인데
이곳 3층으로 이사오고는 창밖 바라보기가 주된 일과에 포함된다.
꽃도 보고 나무가 흔들리는 것도 보고 비도 보고 바람부는 것도 본다.
설이 입장에서는 저층이 더 흥미로울 것도 같다.
그런 설이가 마지못해 나랑 놀아줄 때가 있다.
술래잡기할때와 고무줄 놀이를 할때이다.
술래잡기는 설이 몰래 내가 숨어 있는 나를 찾아다닐때다.
숨을 곳이라고는 방문 뒤나 옷장 옆 그리고 주방 안쪽에 쭈그리고 앉는 것 정도이나
설이는 꿍꿍대며 열심히 나를 찾아다닌다.
그러다가는 술래를 바꾸어서 지가 숨는다.
주로 TV 뒤편이나 옷장 작은 틈 사이, 책상 의자에 숨는 것이지만
내가 찾아내면 그렇게 놀라면서 깔깔 웃어준다.
고무줄 놀이는 머리끈을 던져주면 찾아오는 놀이이다.
강아지만 그러는 줄 알았는데 고양이도 물고 오기를 좋아한다.
물고 오지는 않는데 살짝 자기 몸 아래에 숨겨둔다.
그러다가는 몇 번이 계속되면 내가 못찾을 자기만의 비밀장소인 캣 타워 아래 좁은 틈에 숨겨둔다.
가끔씩 막대기로 그곳을 청소해보면 다양한 고무줄과 종이들이 모여있다.
설이의 하루 마지막 미션은 내가 저녁먹는 것을 식탁옆에서 지켜본 후
자기도 간식 츄르를 달라고 보채는 일이다.(너만 먹냐 하는 딱 그 눈빛이다.)
나는 못이기는 채 설이의 눈을 한번 닦아주고는 츄르 한 개를 준다.
츄르를 받아먹는 설이의 눈빛은 행복감으로 꽉차있다.
그렇게 행복해보일 수가 없다.
이 방학 기간 동안 나의 입에 생길 수 있는 곰팡이를 막아주는데 제일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설이와의 작은 교감으로 이루어지는 이야기이다.
그것이 의사소통과는 다른 웅웅거림일지라도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알아듣는다고 믿는다.
그런데 나에게는 그리 쌀쌀맞은 아들 녀석을 설이는 일편단심 그리워한다.
아들 녀석이 귀가하는 순간부터 나는 찬밥 신세로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