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패션 스타일
검정을 입으면 마음이 편해져요.
의식주 중에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물론 모두가 다 중요하지만 말이다.
굳이 고르라고 하면 의를 가장 후순위에 두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아마도 그게 맞다. 먹고 사는 일보다는 후순위이다.
나는 한때 저 세가지 중 의가 가장 우선 순위였던 시기가 있었다.
사복을 입고 다니기 시작한 대학 시기부터였던 것 같다.
그 이전까지는 모두가 같은 교복에 비슷한 머리 길이와 형태이니
옷이나 머리에 관심이 그다지 없었는데(공부에 전념해서 그랬던 것이라 해두자)
갑자기 나에게 부여된 자유로운 선택이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특히 여대라서 더 그랬을 수도 있다.
게다가 나는 큰 얼굴, 숱이 많지 않은 머리, 통통한 체구와 큰 손 발을 가진
무엇을 입거나 어떤 머리를 해도 빛나 보일 수는 없는 악조건의 소유자였다.
빨강이나 노랑처럼 선명한 색은 전혀 안 어울리고
꽃무늬나 추상적인 패턴 무늬는 20대의 나를 아주머니로 만들어버렸고
딱 벌어진 어깨와 상체 때문에 넉넉한 윗옷이 아니면 안되고(붙는 옷을 입고 살이 삐져나온 내 모습을 차마 볼수가 없었다.)
원피스를 입으면 곧 임산부 옷이 되는 신기한 능력을 보이곤 했다.
할 수 없이 생각한 묘수가 검정색 위주의 넉넉한 상의를 기본으로 하고
상대적으로 덜 통통한 하의는 흰색, 회색, 베이지색으로 색을 맞추는 방법이었다.
그리고는 남들은 잘 모르게 하나의 포인트를 주었다.
그 포인트는 옷에 있는 무늬나 디자인일때도 있고 머리핀이나 가방같은 악세사리류일때도 있다.
그리고 이 방법은 지금까지도 나의 옷 고르기의 기본 생각이다.
아무도 나에게 옷을 잘 입는 법, 체형에 맞는 옷 고르기 이런 것들을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이것은 학교에서도 안 가르쳐 준다. 타고난 감각에 의존해야 할 뿐.
그러고 보니 나의 부모님은 모두 멋쟁이셨다.
두 분 다 키도 크고 얼굴도 멋지고 따라서 무엇을 입어도 빛이 나는 스타일이셨는데
나는 그 외모 부분은 아쉽게도 닮은 부분이 없다.
엄마에게 이런 불평을 하면 “내가 너를 얼마나 이쁘게 낳아줬는데” 라는 믿기 힘든 이야기만 하실 뿐
옷과 머리 스타일에 대한 나의 고민에 동감하지 못하셨다.
머리 모양도 그렇다.
초등학교때는 머리 자를 돈을 아끼느라 엄마가 잘라주셨을때도 종종 있었다. 항상 짧은 커트 머리...
중학교는 귓볼 부근의 단발머리, 고등학교는 양갈래로 묶어서 꽈배기처럼 꼬아서 딴 머리
그리고 두발자유화가 되면서는 다시 짧은 커트 머리였다.
대학생이 되면 성인 기념으로 파마를 하였다. 그 시절에는....
그 따가운 염색약과 뜨거운 열처리 과정을 버티고나면
찰랑찰랑하고 윤기나고 볼륨이 살아나는 그런 머리가 될 줄 알았다.
그 당시에 가장 이쁘고 멋졌던 영화배우 정윤희의 머리 스타일을 꿈꾸면서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더라.
옆집 아주머니 같기도 하고 앞집 할머니 같기도 한 첫 파마머리를 보고 얼마나 속상하던지...
언제부터인지 나는 중요한 일이 있는 날에는 더욱 더 머리와 옷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늙어서 추레해보이는 것도 싫고
너무 꾸민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싫고
꾸안꾸 스타일이면서 세련된 느낌이 내가 원하는 패션 스타일인데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일단 그렇게 꾸미려면 돈이 많이 필요하다.
며칠전 환승을 위해 고속터미널 상가를 지나갔었는데
마침 그 상가에서 사용할 수 있는 온누리 상품권이 있었다.
(학교에서는 1년에 한번 복지 포인트로 온누리 상품권을 준다. 그런데 사용할 곳이 많지는 않다. 전통시장과 이곳 정도이다.)
이제는 제법 더워져 봄부터 여름까지 다목적으로 활용 가능한 상의 하나를 보고 다녔다.
그런데 이제는 통통하지도 않은 내가 아직도 검정색 옷만 눈에 띄는 것은 왜 그런 것일까?
습관이란 이렇게 무섭고 오래가는 것이다.
오래된 습관을 바꾸는데는 노력과 계기와 자극이 필요하다.
굳이 바꿀 필요가 없다면 그냥 가는 것이 경제적이다.
시간으로 보나 스트레스의 정도로 보나...
이제 드디어 얇은 옷을 꺼내야 할 때가 왔다.
이 글을 업로드하고 나면 옷 정리를 해야겠다.
검정색 계열의 옷이 과반수일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