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 좋은 날
소소한 행운이 따르는 날은 많지 않다.
오늘은 출장이 있는 날. 이런 날은 지하철 출근이 최고이다.
차량을 가져갈 때와 지하철로 출퇴근을 할때는 복장이 달라진다.
오늘처럼 외부 출장이 있는 날은 조금은 격식을 차려서 옷을 입게 된다.
흰 바지에 봄 옷 기분이 나는 새 코트를 입고 집을 나설때만 해도
운수 좋은 날이 될 거라는 아무런 조짐은 없었다.
일의 시작은 간발의 차로 지하철을 놓친 것부터 였다.
똥차가 지나가면 세단이 온다는 전설을 믿고 싶었는데
그 뒤로 탄 지하철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일들과 만나기 시작했다.
내가 서있던 자리 앞 좌석에는 범상치 않은 미모의 여고생이 있었다.
가방을 풀어놓고는 여유롭고도 숙달된 솜씨로 화장을 계속했고
(내가 내릴때까지 정성스런 화장은 계속 되었다.)
덕분에 나는 원치 않는 화장품 냄새와 때이른 지하철 에어컨 가동으로 알러지성 콧물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다행이다. 나는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아침으로는 계란 후라이에 설탕 듬뿍 넣어 구워온 나만의 길거리표 토스트를
냉장고에 돌아다니던 두유 한 팩과 함께 먹었다.
두유가 너무 차가울 것 같아 전자렌지에 10초 데워 먹을까 하고 돌렸더니 이내 불꽃이 튀어올랐다.
(학교 전자렌지가 너무 낡았고 바닥에 무언가가 떨어져있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큰 불이 난 것도 엄청 탄내가 난것도 아니었으니.
안도하는 내 코트위로 달걀 노른자가 터져서 흐른 것쯤은
재빨리 손으로 빨아 널었으니 문제없었다.
출장은 왕십리역 근처였다. 왕십리역은 생전 처음 가봤는데 규모가 엄청 컸다.
검색해본 결과로 출장지는 12번 출구라 했는데 나가보니 보이질 않았다.
다시 검색해보니 6-1번 출구라 나온다.
아이쿠야. 이미 시작 시간을 넘어서고 있어 마음이 바빴다.
다시 6-1번 출구를 찾아 갔더니 12번 출구랑 바로 옆인데 초행길이라 빙빙 돌아서 온 것이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100명이 넘는 연수 출장이라 내가 늦은게 티가 안났으니...
퇴근 길 지하철에서는 큰 소리로 전화 받는 사람과
그 사람을 사이에 두고 계속 대화하는 두 사람 때문에 정신이 약간 없었고
붙어 다니는 마을 버스 2개 노선을 조금 기다렸고
(비슷한 경로인데 시간을 차이나게 다니면 타는 사람 입장에서는 훨씬 좋을 것 같은데
왜 항상 앞뒤로 함께 다니는지 모르겠다.)
마을 버스 문 앞 사람이 당연히 내리는 줄 알고 기다렸다가 하마터면 못 내릴뻔 했을뿐
이만하면 괜찮은 하루였다.
아참, 집에 다와서야 아침으로 먹은 길거리 토스트의 노른자 터진 물이
흰 색 바지 뒷 무릎쪽에 한 방울 묻어있는 것을 알았다.
괜찮다. 내 바지 뒤쪽 아래를 관심있게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하루가 다사 다난했지만 오늘은 그렇게 운수 좋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