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지않은 혼밥요리사의 비밀 레시피 75
개학 일주일의 최애 음식은?
개학 하루만에 그간의 나의 고질병은 모두 해결되었다.
수업하느라 힘드니 급식을 많이 먹게 되었고
밥을 많이 먹으니 화장실도 잘 가게 되었고
수업을 많이 하니 몸이 힘들어서 꿀잠 예약 보장이다.
아침에 일어나기가 조금 힘들고(그래도 3일만에 이전 시스템 복구가 가능했다.)
방학 내내 같이 있었던 고양이 설이가 나의 출근 시간에 똥그래진 눈으로 쳐다보는 것이 조금은 안스러울 뿐.
괜찮다. 방학 중 일상보다는 백번 낫다.
개학 1주일 사이에 기억나는 먹거리 중 단연 1등은 간장게장이다.
물론 내가 담근 것은 아니다.
아들 녀석이 외부 출장 갔다가 서울 근교 맛집에서 맛있다고 포장해 온 것이었다.
요새 게 철이기도 해서 대형마트에도 게를 사려는 오픈런 줄이 길게 서있는 것을 보았으나
그 줄에 합류하지는 못했었다.
최소 3kg 씩 포장해주던데 그 많은 양을 다 소비할수 없을 듯 해서 말이다.
평소 간장게장을 좋아라 하지는 않는다.
이빨도 걱정되고 짠 맛도 비린내도 좋아라 하지 않기 때문인데
이번 간장게장은 그런 걱정을 하나도 하지 않아도 되는 찐 맛집이었다.
한 끼에 아들 녀석과 둘이서 게 세 마리를 둘이서 뚝딱 처리하고
남은 국물에 추가로 밥을 비벼 먹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 간장게장은 재구입 의사 100%이다.
두 번째로는 목요일에 끓여서 먹은 소고기 파듬뿍 육개장이다.
파를 길게 잘라서 많이 넣고 콩나물 조금 넣고
빨간 고추기름으로 감칠맛을 낸 소고기 육개장은 오랜만에 딱 알맞게 되어서 맛났다.
친정 아버지의 최애 해장국이셨고
명절의 기름진 음식을 한방으로 제압하기에 딱 좋은 육개장에 또 만족한 한 끼 식사였다.
다음으로는 들기름에 구운 두부와 볶은 김치이다.
이 메뉴는 음식의 고전, 스테디셀러임에 틀림없다.
두부의 밍밍함을 들기름이 한번 잡아주고 신 김치 볶은 것이 레벨업을 확실하게 시켜준다.
두부는 한때 내가 안 좋아하던 음식이었다.
영양소가 듬뿍 들어있는 완전식품 두부가 무맛이던 시절이 있었더랬다.
아마도 자극적인 다른 음식물들에 비하면 초라하기까지 한 메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제는 안다. 자극적인 주연보다 뒤에서 묵묵히 받쳐주는 밍밍한 조연의 중요성을 말이다.
나이가 들면 저절로 알게 되더라. 힘이 떨어지면 저절로 느껴지더라.
그러니 세상사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비웃을 일도 아니다.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음식은 어제 자율동아리 밴드반 연습이 끝나고 학생들과 함께한 치킨이다.
무엇을 먹겠냐 물었더니 치킨을 먹겠단다.
그런데 중학교 학생들의 치킨 먹는 양도 가늠할 수 없고 좋아하는 메뉴도 모르겠어서
무려 세시간에 걸친 세 곡의 연습이 모두 끝난 후 그들이 원하는 치킨집으로 갔다.
그리고 4인 테이블마다 원하는 메뉴를 주문하라 했다.
어느 테이블은 양념치킨을 어디는 치즈를 또 어디는 매운 치킨을 시켰다.(이름도 모른다. 그렇게 짐작할 뿐이다.)
지구를 생각하여 음식물 쓰레기를 많이 생산하지는 말라는 이야기만 하고 즐거운 식사 시간을 주었다.
그러나 어제 치킨집에서의 내 최애 메뉴는 옛 생각이 물씬 나게 하던 강냉이였다.
학교 자율동아리 활동 간식비는 1인 5,000원이다. 어제는 간식비로 올렸었다. 이렇게 오래 연습을 할 줄 몰랐다. 그 예산에 맞추려고 생각하면 사실 먹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에라 모르겠다. 이럴 때 돈을 쓰는 것은 아까운 일이 아니다.
이제 이렇게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사 줄 수 있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
물론 길고 덥고 아프고 입맛이 지독하게도 없었던 이번 여름 나의 최애 메뉴는 단연 물냉면이었다.
여러 곳의 물냉면을 모두 섭렵하고 테스트했던 날들이었다.
그런데 어제 훅 들어온 김모군의 질문에 대해서는 답을 하지 못했다.
우리 학교 근처 유명한 필동면옥과 우래옥의 냉면 중 어느 것이 더 맛있냐는 질문이었다.
일년에 한 두 번 먹는 음식에 순위를 매기는 일은 쉽지 않다.
그리고 음식은 누구와 함께인지, 언제 먹었는지, 내 컨디션은 어땠는지에 따라 만족도가 극명하게 달라지므로 공정한 비교가 쉽지 않다.
변수가 이렇게 많으면 어떤 실험이든 해석이 힘든 법이다. 그러므로 맛있게 먹으면 최고이다.
어느게 더 맛있는지 비교는 전문가에게 맡기지만 나는 참고만 할뿐.
그 전문가의 입맛과 내 입맛이 같을 수는 절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