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지않은 혼밥요리사의 비밀 레시피 76
누가 이런 과자를 먹겠냐고 생각했던 때가 나도 있었다.
어제 밴드반 동아리 격려 모임에서 치킨 말고 입가심으로 주는 손가락 모양의 과자에 꽂혔었다.
옛날 옛적 생맥주집에 가면 자동으로 주던 그 손가락 끼울 수 있는 과자말이다.
정식 이름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그 심심함의 대명사,
달지 않은 그 과자가 나를 옛날로 이끌었나보다.
아침 제법 시원해진 시간을 나는 제일 좋아한다.
천천이 걸으면서 바뀌어가는 꽃도 보고
(날씨가 너무 이상한지 자목련과 명자나무에 꽃이 빼꼼 피기도 했다. 역주행이다.)
길냥이들도 보고(오늘은 눈이 동그랗고 처진 마냥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도 보았다. 줄에 매여 있지 않은 강아지는 오랫만이다. 조금 걱정은 되더라만.)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가는 날씨도 체감하면서 주말 오전을 즐겼다.
그리고 주말 아침 산책의 마무리는 대형 마트가 되던 재래 시장이 되던 장보기가 된다.
오늘은 불고기와 칼칼한 홍합탕 거리를 사고 계산대 앞에서 옛날 과자를 운명처럼 만나게 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친정아버지의 최애 과자인 작은 사이즈의 팬케이크와 모나카 과자이다.
밥을 많은 양 드시지는 않으셨으나 계절별로 작은 디저트용 과자를 달고 사셨던 아버지.
제주에 가시면 감귤 과자를, 부산에 가시면 잔 멸치와 마른 해산물을 기반으로 하는 과자를,
일본에 가시면 일본식 느낌의 자잘자잘한 과자를 종류별로 조금씩 사오셨다.
그 과자를 안방 한 구석에 숨겨두시고는 조금씩 즐겨 드셨던 아버지
(가끔 성적이 올라가면 칭찬 겸 과자를 주기도 하셨었다.)를 보는 것 같이 반갑기만 했다.
점심을 먹고 아버지처럼 나도 과자를 조물조물 먹었다.
어제 학교에서 받아온 정과도 있고 아들 녀석이 어디선가 받아온 감귤 과자와 휘낭시에도 있고
견과류가 하루먹을 만큼 들어간 것도 있으니(호두와 땅콩을 쉼없이 드시던 것은 외할아버지셨다.)
그 옛날 아버지나 외할아버지처럼 나도 과자 부자가 되었다.
다른 것은 과자를 숨겨두지는 않는다는 것일뿐.
그러나 그것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 내가 더 늙으면 나도 숨겨둘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젊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누가 먹을까 싶은 옛날 과자가
나를 마냥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만드는데 나의 몸은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다.
오전 산책을 조금 먼거리 걸었고
대형마트에서 장을 조금 많이 봐서 무겁게 들고 와서인지
한번 다쳤던 왼쪽 무릎이 조금씩 무리했다는 신호를 보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버지의 그 과자를 먹으면서
추석 다음날이 생신날이셨던 아버지가 그리워지는 부작용도 발생했다.
이번 추석 연휴 기간에 납골당으로 인사드리러 가야겠다.
평소 좋아하시던 과자 사진을 하나 붙여놓아볼까나... 거기서라도 맛있게 드시려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