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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골목 투어 스물 한번째

세 가지 장소 중에 선택하기

by 태생적 오지라퍼

집에서 멀지않은 곳에 대학교와 한강공원, 그리고 ***대공원이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세 곳 중 마음에 내키는 곳으로 주말 아침 산책을 나간다.

걸어서 갈 수 있는 멋진 곳이 무려 세 곳이나 있다는 것이 어디냐

어디든 집을 나서본다.


주말 오전의 텅 빈 대학교에서는 나와 새들과 꽃들이 주인공이다.

천천이 이쪽 저쪽으로 대학교 교정을 거니는 시간이 아마도 제일 안온한 시간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주말에 도서관이나 연구실로 올라가는 대학생들을 보면(아마도 대학원생이지 싶다.)

마냥 기특하고 격려해주고 싶고 안쓰럽고 그렇다.

그러나 그들도 한참 지나고 나면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었던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지금은 앞도 보이지 않고 공부는 해도 해도 끝이 없는 듯 하지만

어느틈엔가 무언가를 이루게 되는 것이 학업의 길이다.


한강공원이 멋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채 10여년도 되지 않았다.

강서 양천 쪽에 살 때의 한강은 기껏해야 여의도, 양화나루, 안양천이었고

그것도 동료들에 묻어서 한 두 번 밖에 가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 때는 아들 뒷바라지에 주말이 더 바빴던 시기였다.

이 땅의 모든 수험생 엄마들은 다 그런 삶을 보냈을 것이다.

용산에 이사와서야 걸어서 또는 집에서 보이는 한강이 멋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한강공원을 한바퀴 돌고 나면 답답한 가슴이 조금은 뚫리는 것도 같았다.

이곳으로 이사와서는 서울숲과 이어지는 뚝섬한강공원을 다닌다.

정보로는 야경이 멋있다던데 나는 주로 주말 오전 산책이라 그 아름다움은 아직 느끼지 못하였다.

이번주 더위가 아직 남아있는 주말 그곳에는

숨어있다가 얼굴을 빼쪽 내미는 새끼 고양이도 있었고

강물 소리도 크게 들렸고

무엇보다도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랑 아직은 힘이 남아도는 매미 소리가 가득했다.


숨겨진 나의 산책 코스는 *** 대공원이다.

오전에는 어르신들이 오후에는 러닝크루들이 많이 보이는 곳이다.

커다란 크기의 연꽃들과 다양한 식물과 동물 뿐 아니라

축구장, 테니스장, 그리고 여름이면 야외 수영장, 겨울이면 야외눈썰매장까지 있는 그곳을

나의 속도로 천천이 사진도 찍으면서 크게 한바퀴 돌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이번 주말은 아들 녀석과 함께 돌았더니 더욱 기분이 좋았다.

기분이 좋아진 김에 요새 관심있어 하는 아가씨가 왜 눈에 들어왔는지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아들 녀석의 답변은 의외였다.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서요.” 그럼 되었다.

나도 아들 녀석도 참 열심히 사는 사람인데(열심히 하는 것에 비해서 얻는 것은 그다지 많이 없으나)

결이 비슷한 사람이니 안심이 되었다.

집 주변의 대학교, 한강공원, ***대공원이 주는 분위기가 비슷해서 아마도 나의 주 산책로가 된 것일게다.

비슷한 것은 끌리게 되어 있다.

나와 정반대인 것에는 일시적인 흥미가 생길 수는 있지만

결국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어느 순간 느끼게 된다.(내 경험에 의하면이다. 아마도 불편함을 느꼈던 것 같다.)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아들 녀석과 분위기가 같은 여자라면 더 바랄 것이 없다.

그리고 이렇게 소중한 아들 녀석과 산책할 수 있는 날이 몇 번이나 남았을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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