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했던 명절 저녁의 외식
시댁에서 명절 아침을 먹고(절대 제사는 지내지 않았다. 가져간 반찬들을 놓고 절만 한번 했을 뿐이란다. 남편의 주장이다.)
자취하는 조카에게 한끼 식사와 밑반찬을 선물한 것으로 나는 나의 명절 소임을 다하였다.
친정집도 제사를 지냈고 시댁도 제사를 지냈다.
오랫동안 부담스러웠지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을
올해부터 안하고 나니 가뿐하기도 하고 이래도 되나 싶기도 하고 약간은 모호한 마음이지만
없애는 방향이 맞다.
나는 했지만 내 뒤로 누군가가 할 일은 아닌 듯 하다.
그렇다고 조상들을 무시하거나 그분들의 노고를 잊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별 일을 안했지만 그래도 피곤한 오전을 보내고 푹 쉬고
저녁으로 요즈음 아들 녀석의 최애 메뉴인 평양냉면을, 나는 육개장을 먹으러 나섰다.
남편은 혼자 계시는 시어머니 옆에 남았다.
다행히 오늘 하는 식당을 찾아두었다.
옛날에는 명절이면 모든 식당이 놀았으나 요즈음은 조금씩 영업하는 식당이 있더라.
그게 맞는 듯 하다.
명절 오전과 점심을 지내고 나면 저녁으로는 깔끔한 무엇인가가 저절로 생각나고
내가 또 식사를 준비하기는 정말 싫은 상태가 되기 마련이다.
이런 상태에서 친정아버지는 무언가 새로운 음식을 요구하셨으니 우리 엄마가 명절 때마다 화가 날 만했다.
게다가 명절 다음날은 친구들을 너댓명 이상 불러서 마작과 고스톱을 즐기시는 한량이셨으니 더욱 더 그렇다.
친정집의 명절 저녁 메뉴로 즐겨 먹던 것이 육개장이었다.
습관이 무섭다고 나는 그 때를 기억하고 육개장을 주문한 것이다.
마침 육개장은 그때의 맛과 비슷했다.
아들은 그 맛을 이렇게 정의 내렸다. 시장 골목에서 파는 것 같은 맛이라고...
요즈음의 육개장은 약간 단 맛과 후추 맛과 같은 양념 맛이 강한데
약간은 투박하지만 길게 썰은 파 고유의 맛과
일부는 잘게, 일부는 덩어리로 넣은 소고기의 맛이 적절하게 조화된 옛날 맛이었다.
우리 엄마가 명절에 피곤해서 대강 대강 끓이셨던 딱 그 맛이었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는 그것을 맛나게 한 그릇 비우셨었다.
피곤한 엄마는 육개장 한 그릇을 드시던 아버지에게 항상 눈을 흘기셨었다.
제사 음식을 그렇게 많이 먹고 또 이렇게 많이 먹냐는 눈흘김이셨다.
평양냉면과 수육 반접시를 맛나게 먹던 아들이 물었다.
“엄마는 할아버지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생각이 많이 나?”
육개장을 먹으며 친정 아버지 이야기를 하는 나에게 물어보는 말이다.
“그렇네. 내일이 할아버지 생신날이라 더욱 그렇네. 부모님이라 매일 매일 생각이 나네.”
나도 그 나이에는 몰랐던 사실이다.
나이가 들어가면 더욱 더 부모님 생각이 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어제는 육개장을 먹으니 그 핑계김에 생각이 났다고 치자.
오늘은 또 무엇 때문에 생각이 날까나.
어느 한 가지라도 부모님과 연관성이 없는 것은 없을테니 또 무언가 때문에 두 분 생각이 날 것이다.
오늘은 돌아가신 친정아버지 생신날이고
한창때의 아버지는 이날을 친구분들과 함께 즐거운 날을 보내셨을 것이고
다음 날은 해장용으로 김치국밥을 드셨을 것이고
엄마는 힘든 손님 뒤치닥꺼리에 두통으로 머리에
긴 수건 하나를 묶으셨을 것이고
젊었을때의 나는 설거지 지옥에서 벗어나서 며칠만의 나들이를 시도했을 것이다.
그때가 참으로 행복한 시절이었다. 늙어보니 알겠다.
평양냉면과 육개장을 맛있게 먹고 버스 5정거장 거리를 산책하고(걷다보니 꽤 멀고 아직은 더웠다) 집에 오던 길에
맛난 디저트로 올해 마지막이 될 팥빙수를 먹었다.
빙수만 하는 이곳은 최고이다.
팥도 최고이고 우유 얼려서 갈은 베이스도 최고이고 장인의 느낌이 물씬 난다.
추석이고 9월말이 되어가는데 아직도 더워서 빙수를 먹는다니 이것 또한 역사적인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