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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생적 오지라퍼 Oct 15. 2024

늙지않은 혼밥요리사의 비밀 레시피 87

즐거운 재래시장 나들이

어제 학교 급식 디저트로 미니 호떡이 나왔다.

벌써 호떡의 계절이 왔나 생각하다보니 나에게는 계절 상관없는 호떡 사랑이 있음이 새삼스러워졌다.

내가 다니는 재래시장 한 구석에 호떡 파는 곳이 있다.

호떡만 파는 것은 아니고 다양한 간식거리를 파는 것 같은데 나에게는 오로지 호떡만 보인다.

오리지널 호떡도 있고 색과 보라색을 띠는 호떡도 있는데 나는 오리지널만 먹는다.

사실 나는 퓨전 음식을 별로 좋아라 하지 않는다.

호떡에 다른 색을 넣는 시도는 보기에는 이쁜데 먹고 싶은 맘은 별로 들지 않는다.

수업이나 다른 일에서는 융합을 좋아라 하는데

음식에서만은 왜 융합의 다른 버전인 퓨전을 별로 내키지 않아하는지는 정확히는 모르겠다.

내가 가끔 퓨전 요리를 할때는 무언가가 부족할 때였던 내 경험이 반영되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나는 꽤 큰 크기의 오리지널 호떡을 종이컵에 받아서

호호 거리며 설탕물을 흘려가며 먹는 것을 좋아라 한다.(설탕물이 뜨거워서 혀가 놀란다.)

아마도 꽤 오래전부터였던 호떡 홀릭이다. 부산에서도 남대문에서도 호떡에 시선을 뺏긴 적이 많이 있다.


그 재래시장 한 구석에서 좌판에 소량의 나물들을 파는 허리가 구부정한 어르신이 계신다.

물론 한 분이 아니다. 곳곳에 계신다.

그런데 나는 딱 한분에 꽂혀서(왜인지는 모르겠다. 몸의 형체는 외할머니를 연상하게도 한다.)

그 곳에서만 오이지도 사고 호박잎도 사고 고구마순도 사고 미나리, 고수도 산다. 물론 한 움큼씩이다.

그 좌판에서 아마도 제일 맛난 것은 잘 절여진 오이지이다.

오이지무침은 나와 아들 녀석의 최애 반찬인데 일단 오이지가 꼬들꼬들 맛있어야 한다.

그리고 최대한 얇게 썰어서 양념이 잘 배게 해줘야 한다.

우리 엄마의 오이지 무침이 참 맛났었다.

여름 한 철 물 말은 밥에 오이지무침만 있어도 충분했었다.

그 어르신의 오이지는 때깔부터 사이즈까지 오독오독 엄마표 오이지무침에 딱 맞는다.

가끔 아침 일찍 장에 가면 안보이실때도 있다.

그러면 오지라퍼답게 걱정을 하기도 한다. 어디 편찮으신가 하고 말이다.

이제 일을 그만두어도 누가 뭐라하지 않을 나이시겠지만

아마도 나처럼 일하러 나오는 것이 정신과 몸 건강 모두에게 더 나을 것이다.

일하는 순간에는 많은 어려운 것들을 잊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적지만 돈을 벌게 되니 얼마나 좋은가?

돈을 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


 저녁 맛나게 볶아진 닭갈비를 먹으면서 알배기 배추에 싸 먹었더니 달고 맛났고

아욱국을 끓이면서 남은 배추 몇 조각도 넣었었다.(이건 퓨전음식인가?)

이제 드디어 알배기 배추 하나를 다 먹었다.

또 일주일 동안 아들의 최애 반찬이던 오이지무침도 딱 떨어졌다.

꽃게탕에 넣으려고 산 달달한 호박고구마도 어제 닭갈비볶음에 넣어서 다 먹었다.

난 닭갈비볶음에 감자보다는 고구마 넣는 것을 선호한다. 개인 취향이다.

무 한 개는 꽃게탕, 소고기무국, 육개장, 굴국 나머지는 깍두기까지 자신의 소임을 충분히 다 했다.

소량씩 음식을 하니 가능한 일이다.

오늘은 남은 야채를 통털어 넣고 스키야키식 전골을 끓여 먹으려 한다. 

얼마 남지않은 고수 올려서 먹음 딱이겠다.

아들이 정시퇴근을 한다는 가정 아래 말이다.

혼밥일 경우는 닭갈비볶음 국물에 야채 잘게 잘라넣은 볶음밥이다.

이제 냉장고가 많이 비워졌다.  재래시장 나들이 할 명분을 확보한 셈이다.


(어제 올해 첫 홍시를 먹었다. 잘 익었더라. 친정 아버지의 최애 과일은 홍시였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먹어도 생각나는 부모님. 내가 이리 효심이 깊을줄이야. 나도 몰랐고 부모님도 모르셨을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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