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생적 오지라퍼 Oct 18. 2024

늙지않은 혼밥요리사의 비밀 레시피 88

대파와 양파 사이

출근하자마자 하는 나의 첫 일과는 학교 식물 관찰이다.

학교 입구의 기다란 구절초는 가을임을 알려주고 있지만

역주행 중인 장미와 흰 벚꽃 몇 송이는 아직도 고고함을 자랑하고 있다.

어제 새로 심은 국화는 이제 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고

텃밭의 대파와 양파는 아직은 여리여리하나

아마 이번 주말 비를 맞고 나면 씩씩해질 것이라 생각된다.

어제 심고 남은 모종은 교무실 중앙탁자에 두고 메시지를 보내 나눔 행사를 하였다.

그리고 몇 가닥은 과학실 비이커 2개를 가져다가 위 사진처럼 물속에 담가 두었다.

수경재배를 하면서 대파와 양파 생장의 차이점을 살펴볼 생각이다.

나는 거의 모든 요리에 대파와 양파를 넣는 것을 좋아한다.

이제 파테크와 양파테크를 기분 좋게 준비한 셈이다.

그리고 어제 다 정리한 방울토마토의 꽃 핀 줄기는 잘라다가

아들녀석이 선물로 받아온 멋진 술병(술은 물론 다 먹었다) 꽂아두었더니

방울토마토 꽃잎 향기가 온 교무실에 은은하게 펴져나갔다.

아마도 이것도 흰 뿌리를 내리면서 꽤 오랫동안 버텨줄 것이다.


이번 주 아들 녀석은 하루를 빼고는 모두 정시퇴근 중이다.

지난주 거의 매일 데이트를 나가더니(휴가 기간이었다.) 이번 주는 조금 쉬어가나보다.

나이가 꽉찬 관계로 데이트를 나가도 걱정, 안 나가면 더 걱정이다.

어제는 아침에 예전에 다니던 오징어볶음이 유명한 식당을 지나친 관계로 저녁 메뉴를 오징어볶음으로 순식간에 픽하였다.

그런데 마트에 오징어를 사러갔더니 너무 많은 묶음으로 파는 거다. 한 묶음에 8마리 정도된다.

오징어볶음에 2마리, 오징어무국에 2마리를 한다고 쳐도 4마리나 남는데다가

나는 한번 먹은 메뉴를 최소 2주일은 지나야 먹는 시스템을 가동 중이고

특히 냉동실에 재료를 오래두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과학교사인데 전자제품의 기능을 완전 믿지는 않는다.

아들 녀석은 특히 냄새와 신선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장이 안 좋은건지 알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래서 더더욱 신선한 재료로 소량씩 음식을 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살까말까 고민하던 중에 옆에 작은 쭈꾸미 4마리가 포장된 것이 보였고 급 마음을 바꾸었다.

작은 사이즈의 쭈꾸미 4마리쯤은 한 끼에 맛나게 먹을 수 있으리라.

콩나물 조금 넣고 양파와 대파 넣고 쭈꾸미를 달달 볶아서

그냥도 먹고 남은 국물에 밥까지 싹싹 비벼서 아들과 실컷 먹었다.


오늘은 두부와 참치 같이 넣고 간간하게 졸여주고

슴슴하게 소고기감자국 끓이고

남아있던 작은 조기 세 마리를 구워두었다.

아들은 아마도 3층 복도에서부터 생선 냄새가 난다고 투덜대면서 들어올 것이다.

내일은 불고기나 제육볶음해서 쌈채소와 먹으면 되겠다. 새벽배송을 시켜두었다.

아침 거리는 친한 후배가 학교에 들리면서 가져다 준 맛집 빵이 있다.

메뉴가 이리 미리 산뜻하게 결정되면 주말이 더욱 해피하다.

어떤 때는 하루 종일 머리에서 뱅뱅 돌 뿐 먹고프거나 하고싶은 메뉴가 생각 안날 때가 있다.

이번 주는 2학년 수업이 힘든 내용이었고

다음 주는 3학년 수업이 어려운 내용이다.

아이들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교사인 나도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주말에 아이디어를 더 생각해봐야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맛난 것을 먹어야 한다.

그리고 비가 오니 언제 더웠었나 싶다.

사람 마음은 참으로 간사하기 이를데가 없다.



작가의 이전글 늙은 과학 교사의 수업 이야기 8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