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골목 투어 스물 다섯번째
어제 오후 산책과 오늘 아침 산책의 비교 분석
가을은 항상 너무 아쉽다.
오는가 싶으면 가고 있는 가을은 항상 첫사랑처럼 아련하기만 하다.
이렇게 쓰고 있으니 아직도 1년에 한 번쯤은 꿈속에 나타나는(?) 나의 첫사랑이 생각난다.
더 추워지기 전에 부지런히 가을을 즐기러 아침 산책을 나섰다.
오늘은 한양대 입구에서 출발한다.
나의 대학시절, 유달리 한양대 공대를 다니던 친구들이 많았더랬다.
이공계를 우대하기 시작하던 시절이어서 공대생을 많이 뽑았기도 했고
공부를 조금 했다하는 친구들이 소위 SKY 대학을 떨어지고 나면
모두 한양대 공대를 가기도 했었다.(옛날 시절 이야기이다.)
그런데 당시 화곡동에 살던 나에게 한양대는 너무 멀고도 먼 곳이었고
그때에도 멀미가 심했던 나에게는 1년에 한 번 대학 축제때도 방문하기 쉽지 않은 곳이었다.
지금에야 알았다.
화곡동이 서울 중심에서 너무 멀리 있는 곳이었지
한양대는 결코 서울 중심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라는 것을,
세상은 모두 지나칠 정도로 자기중심적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말이다.
어제는 정동길에 가면서 어느 쪽으로 귀가를 할 것인가 고민했었다.
첫째, 광화문 쪽으로 가는 옛 퇴근길을 걸어가면서 익숙했던 헤어샵과 옷 편집샵을 둘러볼 것인가? (새 옷을 사지 않은지 꽤 되었다. 패션에 관심이 점점 줄어드는 것은 늙어서일까? 은퇴하면 옷이 많이 필요하지 않아서일까? 아마 반반일 것이다.) 이곳으로 가면 5호선으로 퇴근하면 된다.
둘째, 덕수궁과 서울시청까지를 살펴볼 것인가? (그 길은 항상 사람이 북적거려서 길을 오롯이 즐기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그리고 때때로 시위대를 만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가을의 낭만을 볼 수 있다.) 이곳으로 가면 2호선으로 퇴근하면 된다.
결국 어제의 나는 덕수궁쪽을 선택하였었고 항상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은 남는 법이다.
다만 광화문쪽은 11일 서울시교육청 출장이 있으니 그때를 기약해보기로 타협하였었다.
오늘은 한양대입구쪽에서 서울숲쪽으로 천천이 걸었다.
어제 정동길도 아직 단풍은 시작점이었는데 오늘 서울숲도 최고점은 아니었다.
그리고 어제 정동길 오후도 사람이 많았는데
오늘 오전의 서울숲도 사람과 강아지로 가득했다.
꽃과 하늘 사진을 50장은 족히 찍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원래 계획대로라면 지하철을 타고 귀가하는 것이었으나
날씨가 걷기 딱이라 마냥 걸어보고 싶었다.
처음 보는 서울숲 뒤편길로 들어서니 한강공원이랑 이어지는 비밀의 숲이 있더라.
오늘 표지는 한강이 따악 나타나는 신기한 입구에서 찍은 사진이다.
산책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고 라이딩이나 러닝크루들만 보이는 아침의 한강공원.
해가 반짝나지 않아서 흐리게 보였지만
앞쪽으로는 남산타워가 뒤쪽으로는 롯데타워가 보이는 갬성가득한 한강공원을 걸으며
아직은 두 시간 정도의 산책이 가능한 내 다리의 건강함에 감사했다.
자주 다녀서 익숙한 길을 걸은 어제와 다르게
오늘은 생전 처음 가보는 길을 그냥 걸어본 것이다.
이리로 쭉 가면 몇 번 가본 곳이 나오겠지하는 감과 직진 본능만으로 걸어본 길이다.
어제는 사람들이 엄청 많은 길이었으나 오늘은 지나가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한적한 길이었다.
세상에는 가봤던 익숙한 길과 생전 처음 가보는 길 두 가지가 존재한다.
그리고 항상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는데 그 선택에는 나름의 이유와 운명이 함께한다.
한양대입구에서 시작해서 서울숲을 거닐고 한강공원을 거치는 오늘의 경로는 훌륭했다.
한강공원에서 열린 농부시장에서 갓김치 한 팩을 사고 (우연히 만난것이라 기쁨 두 배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트에서는 이제 값이 제법 싸진 시금치와 그냥 구워먹어도 좋을 버섯을 사가지고 왔다. (소고기 맛과 비슷한 버섯이더라)
이제 이렇게 산책할 수 있는 토요일 아침도 올해 몇 번 남지 않았다.
그것이 무지 아쉬울 뿐. 더할 나위없이 만족했던 토요일 아침 산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