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지않은 혼밥요리사의 비밀 레시피 100

100이라는 숫자

by 태생적 오지라퍼

같은 제목으로 100번째 짧은 글을 쓰려니 머뭇거려지는 마음이 조금은 있다.

100이라는 완성형 숫자가 주는 부담감이다.

9개와 10개의 차이도 무척 크다. 브런치에서는 더욱 그렇다.

라이킷수가 10개를 넘으면 메시지가 온다. 그러면 무지 뿌듯하고 안도감이 든다.

9개에서 그치면 고작 1개 차이인데도 좌절감과 함께 무엇이 잘못 된 것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물론 깊이 고민하는 것은 아니지만...

99점과 100점의 차이 또한 그렇다.

아깝게 1점 짜리 문제를 틀린 경우(대개 1점 배점의 문제는 난이도가 최하인경우이다.) 더 속상할 수 있다.

이렇게 100이라는 숫자가 주는 완성형 메시지 때문에

오늘 어떤 글을 써야할까를 잠시 생각했지만 늘상 그랬듯이 오늘의 일을 담담하게 써내려가려 한다.

그게 나의 글이고 스타일이니 말이다.


월요일 갑자기 양념갈비가 먹고 싶었다.

아들 녀석을 따라서 본의 아니게 양념을 조금만 하고 약간은 퍽퍽한 음식들만 먹어서였을게다.

그리고 양을 많이 할 필요도 없겠다 싶어서 또 생전 처음으로 톡딜에 올라온 양념갈비 1팩을 주문해보았다.(톡딜은 두번째 양념갈비로는 처음)

맛이 있을지도 모르고 상태도 알 수 없으니 1팩 정도는 망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고

특별가라 가격도 저렴해서 선택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시스템의 안좋은 점은 언제 배송될지를 짐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형 마트의 경우는 당일 배송이 대부분이니 나의 퇴근 시간 이후 배송을 선택하면 대충 짐작이 되는데

이 새로운 시스템은 배송 시간을 내가 결정할 수는 없고 마냥 기다려야만 한다.

당장 먹을 것은 아니니 오는대로 구워먹으면 되겠다 생각했는데

다행히 수요일 퇴근길에 배송완료 메시지가 왔다.

다른 택배들 처럼 스티로폼팩에 넣어져 현관문 앞에 놓여있었고

들고 들어올때까지는 분명 별 이상이 없어보였는데

스티로폼팩을 여는 순간 양념갈비 국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걸죽한 국물이어서인지 다행히 주방 바닥까지 흐르지 않은채로 내 손을 적시는 정도로 마무리가 되었는데

그 냄새에 고양이 설이가 흥분한 채 뛰어다녀서 국물있는 스티로폼 상자에 빠질까봐 걱정이었다.

상자라면 어떤 형태이건 사죽을 못쓰는 고양이이니 말이다.

일단 그 상태를 사진찍어 두었다.

스티로폼팩 열자마자와 갈비팩을 꺼낸 후 모습을 각각 찍었다.

그리고는 생전 처음으로 판매 업체에 사진을 보냈다. (톡으로 연락이 되더라)

보내고서도 아무런 기대조차 없었는데

금방 사과의 메시지가 오고 주소를 확인하더니 취소 혹은 재발송을 선택하라는 메시지가 왔다.

아마 자동으로 뜨는 처리 과정인 듯도 싶었다.

그 메시지를 보니 오히려 내가 당황스러웠다. 이런 경험이 처음이다. 교환도 잘 못하는 쑥맥이다.

양념갈비를 엄청 파는 대형 갈비체인도 아닌 듯 했는데

이런 식으로 배송 되어 모두 취소가 되면 피해가 엄청날텐데 싶었다.

그런데 이미 시작된 일이었고 해당 업체는 업체대로의 매뉴얼이 있는 듯 했다.

잠시 고민하다가 재발송을 해달라고 하고(그것이 업체가 피해를 덜 입는 일일것 같았다.)

갈비팩을 한번 더 패킹하고 흔들지 말아달라고 배송업체에 표시해주면 좋겠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는 오늘 퇴근길에 재발송된 양념갈비가 이번에는 얌전하게 배송완료 되어 있었고

주의 사항으로 흔들지 말아달라고 진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오늘것을 열어보고서야 그 업체에 미안한 마음이 조금은 사라졌다.

이렇게 국물하나 흐르지 않고 완벽하게 배송이 될 수 있는 일이었다.

업체는 다음부터는 발송하면서 모두 이렇게 주의사항을 쓸 것이고

그러면 나처럼 국물이 흐르는 상황은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나를 마음 편하게 해준 것이다.

대부분 참고 그냥 넘어가고 혼자서 중얼대는 나의 스타일과는 다르게

정중하게 불편함을 호소해보았더니 업체에게도 나에게도 좋은 경험이 된 것 같았다.

이번에도 그냥 참고 국물이 없어진 양념갈비를 내가 다시 간맞추고 먹었어야 하나 생각도 했었는데

그것은 그 업체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모른체 하는 것 그것이 도와주는 것이 아닐 경우도 종종 있으니 말이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 진짜 중요한 몇가지를 제외하고 절반은 모른척 넘어가기도 한다.

일일이 다 지적하면 잔소리 대마왕이 되기 마련이다.

아는데 넘어가주는 것을 학생들은 이미 알고 있다.

그것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업체들은 일이 있는데 넘어가주는 것인지를 알 수 없다. 직접 접촉하지 않기 때문이다.

악덕 컨슈머는 정말 나쁘지만 정당한 이야기는 해주는 용기도 필요하다.

이번 나의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부과하는 오늘의 글쓰기인데

그냥 넘어갔어야하나 하는 생각이 아직도 1% 정도는 존재한다.


아무튼 오늘 저녁은 그 양념갈비 굽고(1팩이라 2대 정도의 분량이다. 이정도 양념갈비는 먹어도 살 안찐다.) 사이드로 버섯과 소시지 조금 굽고 물만두 몇개 찌고 샐러드용 야채와 함께 특식 기분을 내면서 먹었다.

맛은 괜찮았고 명절에 양념갈비 하기 싫어지면 구입할 의사도 있다.

물론 아들도 나도 양념국물은 손대지 않고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명색이 다이어트중이지 않는가 .

나만 내일쯤 그 양념국물에 찬밥넣고 볶아서 먹을지도 모른다만...

다시 내일 아들 녀석의 도시락은 닭가슴살 굽고 구운 달걀과 방울토마토, 사과 넣은 누가봐도 100% 다이어트용 샐러드이다.

그리고 내일이면 어제 점심 학생들이 운동장에 만들어둔 눈사람은 아마 사라질 것이다.

99번째에서 100번째가 되는 나의 음식 이야기도 내일이면 눈사람처럼 될 것이다.

101번째가 다시 시작될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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