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과학교사의 수업 이야기 99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 내 마음의 텃밭 하나

by 태생적 오지라퍼

사실 학교의 화단처럼 관심을 못 받는 학교의 구성물은 없지 싶다.

일단 별 생각 없이 학교 화단에는 그렇고 그런 식물을 심는다.

그리고 물을 주거나 관리를 해주는 경우도 극히 드물다.

더운 여름철에도 오로지 소나기에 의존한 채로, 추운 겨울도 식물 자체의 힘만으로 버텨낸다.

기후변화나 생태환경 등에 대한 의식이 조금은 높아진 지금도

10대들에게 식물을 보고 관찰하고 키워보는 활동이 흥미로운 활동이 되기는 힘들다.


이전 학교에 온 첫 해, 학생들과 광합성 수업을 했다.

목동지역의 학교에서라면 광합성이 일어나는 과학적인 과정과 광합성량에 영향을 주는 변인들, 광합성량과 관련된 그래프 해석 등 많은 개념들을 이해시키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시험 예상 문제를 풀어보고 정답을 맞추어보는 것에만 이것들의 복습에만 열중했을 것이다.

새 학교에서 어느날 문득 광합성이라는 어려운 과학 개념에 대한 이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다른 해와 비슷한 패턴의 수업을 진행했다.

그런데 1주일 정도를 광합성 내용으로 수업을 해도

학생들의 이해도와 관심도가 제자리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과학에 관심1도 없는 여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다른 학교보다 훨씬 아름다운 학교의 나지막한 산책 동선을 걸으면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광합성 기작은 고등학교에 가서 혹은 과학 공부를 하려고 마음먹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광합성량에 영향을 주는 변인들을 직접 알게 하려면 식물을 직접 재배해보는 것이 살아있는 공부가 아닐까,

식물에게도 생명 유지에 대한 강한 힘이 있다는 것을 직접 느껴보는 것,

그리고 식물을 키우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 것인지를 지금 체험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은 아닐까,

이것이 실생활을 기반으로 하는 광합성 수업이 아닐까... 생각이 곧 실천을 가져왔다. 내가 조금 용감하다.


운동장의 비어있는 공간에 텃밭을 만들고 무엇을 심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방법은 해마다 변화하였다.

학급별로 텃밭 운영에 필요한 물품을 제공하고 수업 중에 기르고 싶은 작물에 대한 기초 조사를 실시하였다.

텃밭 만들기 활동 전에는 레고를 이용하여 시뮬레이션 활동도 진행하였다.

1학기에는 방울토마토, 가지, 호박, 고추, 상추, 깻잎 등을 키워 학급 캠프를 위한 요리 재료로 활용하였다.

수업 시간 중에 심고, 설명 듣고,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물을 주는 작은 노력으로도

쑥쑥 자라는 것이 눈에 잘 보이고 여하튼 생각보다 어려움이 없이 잘 자라주었다.

학기말에는 샐러드를 해먹고 쌈을 몇 번 식당에 제공할 정도로...

첫 해 미니텃밭에서 좌절감을 맛보았으면 더 이상의 도전은 없었을텐데

2학기에는 자신감이 생겨 더 큰 도전을 하게 되었다.

가정교과와 융합하여 김장하기 체험활동을 진행한 것이다.

김장에 필요한 과학적 내용도 학습하고

학교 텃밭에서 스스로 키운 무, 배추 등으로 김치를 담가보는 것이라 학생들의 관심과 만족도가 높았다.

이렇게 담근 김치는 급식 시간에 친구와 교사에게 일부 제공하고

일부는 2016학년도에는 중구 노인복지관에,

2017년에는 정동 프란체스코 수도원에 기증하고,

2018년에는 학교 급식에 활용하였다.

중구청에서 텃밭 상자를 지원받아 교직원들이 쌈 채소를 재배하여 급식으로 제공하기도 하였고

특수학급도 별도의 텃밭을 만들어 가꾸면서 생태와 관련된 체험을 하였다.


해가 지날수록 간이 커져서 전문 강사의 도움 없이 본교 교사와 학생들의 힘으로만 텃밭을 구성하여 가꾸고,

특수분야 직무연수를 통하여 타 학교 교사들에게까지 생태 텃밭의 필요성과 효과에 대한 연수를 진행하였다.

점점 작물의 범위를 넓혀서 오이, 참외, 가지.부추,고수,샐러리 등까지 생물다양성 수업과도 연계하여 진행하였다.(오이는 힘들다. 물이 너무 많이 필요하다.)

이전학교를 방문하는 외국방문단들까지도 생태 텃밭을 관심 있게 구경하였으니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시작할 때에는 비록 실패해도 농업이나 식물 생장의 어려움을 학생들이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소정의 목표를 달성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자꾸 자꾸 욕심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식물의 생명력을 놀랍게 관찰할수 있는 그 느낌이 좋아서 그 이후 매년 계속 텃밭 활동을 진행하게 되었다.

흙에서 어린 무가 쏘옥 올라온 것을 보는 기쁨.

딸기가, 오이가, 참외가 수줍게 달려있는 것을 보게 되는 날의 상큼함은

그 무엇에 비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그렇게 도시농부가 된지 10여년이 되어간다.

올해는 여름이 너무 더워서인지 텃밭 작황이 제일 나쁜 한해로 기억될 것 같다.

배추와 무 모종 심은 것도 폭망했고(이런적은 처음이다.)

딸기랑 방울토마토가 그나마 제일 나았으며(방울토마토의 생명력이 최고인듯 하다.)

아니다, 상추는 오래토록 나누어 먹었었다.

지금은 외로이 부추와 쪽파가 첫 눈을 뚫고 서있다.

이번 주 목요일 동아리 시간을 이용해서 김장 담그기를 한다.

부추, 쪽파 남은 것 썰어넣고 겉절이 담고 학생 1인당 배추 1/4 포기씩 담아가는 활동을 준비중이다.

나는 학생들 옆에서 돼지고기 삼겹을 조금 삶을까말까를 고민중이고(겉절이의 효용성을 높이고자 함이다. 고기가 먹고 싶어서는 절대 아니다.)

며칠전 의도치않게 1+1으로 구입한 양파 잘라

양파김치도 담아볼까한다.

이제는 며칠전 첫 눈을 맞아서 고개가 반쯤은 수그러진 국화만이 애처로운 눈빛으로 텃밭을 지키게 될것이다.

잘 된다면 내년에 다시 그 자리에서 볼수 있을지 모른다. 그것도 텃밭이 주는 행운이기도 하다.

내년에 나는 또 어디서 무엇을 키우고 있으려나? 내 마음 속에는 어느새 작은 텃밭이 자리잡고 있다.


오늘 3학년 수업으로 진행된 기후 위기 특강에서는 기후 지도를 스티커로 붙인 지구 모형을 만들었다.

사진에서처럼 휴게실 가운데 비어있던 나무 모형이름과 소원까지 쓰고 매달아주었더니 제법 연말 분위기가 난다.

그러나 나는 어느 유명 강사의 기후 위기 특강보다

텃밭에 식물 하나를 직접 키워보는 것이 지구를 지키는데 훨씬 효과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굳게 믿는다. 10여년의 내 경험을 바탕으로 한 빅데이터의 산출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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