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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생적 오지라퍼 Dec 13. 2024

늙지않은 혼밥요리사의 비밀 레시피 106

인사동의 조금은 특이한 점심

인사동의 점심은 특이했다.

가끔 인사동을 학생 인솔로 가서 점심을 먹었던 적이 있었으나 어제 같은 느낌은 못받았었다.

한식집이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학생 인솔의 경우 8,000원의 식사비에 맞추고(물론 차액은 나이든 내가 대부분 처리했다만)

젊은 선생님들의 입맛에 맞춘 메뉴를 선정하니 한식집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와 비슷한 연배의 모임들이 그렇게 많이 인사동 한식집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까맣게 몰랐었다.

첫 제자들과의 송년회인데 아마도 나를 생각해서 그리로 식당을 정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 그 녀석들은 인사동 한식집에 그렇게 나이 든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미리 알았던가?

안국역에 내렸을때부터 동년배들이 많이 보이기는 했었다.

그리고 또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브레이크 타임이 없더라.

한식집들이 인사동 한 골목 여기 저기에 모여있었는데

그 골목 식당은 브레이크 타임이 없다는 안내문이 여기 저기 붙어있었다.

어디든 어떻게든 살아남는 비법은 있는 법.

식당 이름도 특이한 곳이 많고 비법도 쓰고 다들 그렇게 노력하겠지만

그래도 식당이 유지된다는 것은 맛이 없어서는 안되는 법이다. 무슨 일이든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


남도 음식 전문점은 믿고 들어가게 된다.

몇 번 되지 않지만 전라도를 방문했을 때 먹은 음식들은 모두 맛있었다.

그 지역에서 유명한 곳을 찾아갔으니 그럴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양념과 김치가 맛갈났다.

어제 그 식당은 한정식집이지만 하나씩 음식이 나오는 것이 아니고 한번에 한상 음식이 다 나온다.

인력대비, 시간대비 음식이 하나씩 나오는 식당은 고급이고 비쌀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나는 하나씩 나오는 그 시스템이 더 우월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를 다 먹고 다른 하나를 먹어야 하는 순서보다

모두 다 놓고 이것도 저것도 함께 조합해서 먹어보는 것이 약간은 참신함을 추구하는 방식이 내 스타일에 더 맞다.

어제가 바로 그런 식당이었다.


고등어구이, 각종 야채가 들어간 전(?), 약간 퓨전 스타일의 골뱅이 무침(이것을 제일 많이 먹었다. 바로 앞에 있어서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무와 코다리 조림, 맛난 시골 스타일의 볶음김치(엄마가 해준 맛이랑 비슷했다.)와 무엇이 있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다양한 밑반찬과 함께 하얀 순두부 국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밥이 적은 양이라 좋았다. 나는 밥 러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양의 밥은 반쯤 남기게 되어 미안하다. 종종...

밥알 동동 뜬 동동주(?)가 남아서 추가 주문한 짱뚱어탕(내 기억으로는 처음 먹어본다)의 맛이 어떤 것인가 이제는 알겠다.

내가 먹기에는 다소 짠 느낌이 있었으나 잘 갈아서 만들어져 추어탕과 비슷하고 진국의 국물은 보양식으로 나쁘지 않았겠다.

남도 음식 특유의 양념과 정성이 들어간 한 상을 받으니 올해가 다 지난 것도 실감이 나고

다음에는 꼭 내가 맛난 것을 사는 기회가 오기를 바래본다.

자꾸 제자 녀석들이 밥을 산다.

그들이 나보다 훨씬 많이 버니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나는 아직도 그들에게 짜장면을 사주던 그 시절의 기억으로

내가 맛난 것을 사주는게 당연한 상황이 되었으면 한다.

얻어먹는 것보다 내가 사주는 게 더 좋은 나는 이타적인 사람인가?

그것은 모르겠지만 다음에 맛난 것을 사는 기회로 아들 녀석의 결혼식이 되기를 강력하게 희망하고 있다.


함께 하는 수다는 덤이었겠지만

쓸데없이 화가 많아지고 분한 것이 많아져서

이제는 반사회적(?)이 된 옛 스승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미덕을 발휘한 제자들에게 감사하기만 하다.

그리고 그들에게 큰 걱정을 끼치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불행하게도 그렇게 맛있게 먹고 내 맘대로의 즐거운 수다를 떨어댔는데

요새 아픈 위가 도통 가라앉지를 않는다.

제자 한 명이 더 와서 더 맛난 저녁을 먹기로 했지만 나는 도저히 먹을 수가 없다.

이렇게 글을 쓸 정도로 맛있는 것 먹는 것을 좋아하는 나이지만

한 끼를 잘 먹고 소화시키는 것이 이렇게도 중요한 일인가를 새삼 느끼는 요즈음이다.

집에 돌아와서도 저녁도 건너 띄고 글쓰기도 건너 띄고 이른 잠을 청했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위와 대장 내시경 예약을 해두었다.


(인사동 식사후 광화문까지 걷는 동안 고교시절 내 통학로도 눈에 담고

아침으로 즐겨먹던 덩이 식빵 팔던 곳도 쳐다보고

추억 돋우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맛난 커피. 생강차가 더 끌리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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