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과학 교사의 수업 이야기 115
그래도 아직 할 일은 많이 남았다.
오늘은 정말 오롯이 질병 휴가의 날이다.
사실 1년에 질병으로 결근하는 날은 없었던 해가 더 많다.
수업을 다하고 조퇴를 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아예 학교를 못나갈 정도로 아팠던 적은
2023년 코로나19, 2025 A형 독감처럼 법정 전염병이었던 경우를 빼면
허리가 우지끈했던 날, 귀 평형감각 이상이 났던 날, 급성 위경련이 일어난 날
그 정도만 기억이 난다.
이 정도면 40년 참 성실하게도 학교에 갔다. 미련하고 우직스럽기까지 하다.
그런데 학교에 가는 것이 싫은 날이 없었다.
학생들과 혹은 다른 선생님들과 트러블이 있었던 특정 시기 빼고는
언제나 학교를 가는 일은 즐거웠고 다음날 수업을 준비하는 일은 흥미로웠다.
이렇게 설명해볼까 이것을 먼저해볼까 그런 고민하는 시간이 살아있다는 증거의 시간들이었다.
내일 활동을 생각하는 것을 보니 이제야 맑은 정신이 조금은 돌아온 것 같다.
오늘 아침 일단 중요한 업무를 톡으로 처리하고 아침약을 먹고는 다시 잠이 들었나보다.
그리고는 깨보았더니 여러 톡이 들어와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위의 사진이었다. 사진을 보는 순간 눈물이 쓱 차올랐다.
오늘 2학년 야구부들이 전지훈련을 떠나는 날이다.
원래대로라면 어제 전자기 회로 연결 키트를 만들고 선물로 주면서
잘 다녀오라고, 다치치 말라고 당부의 이야기를 했어야 마땅하나 그것을 못했다.
오늘 전지훈련 가는 아이들이 독감이라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나보다.
내 책상위에 저것을 놓고 갔다한다.
옆 자리 선생님이 사진을 찍어보내주셨다.
삐툴빼툴 글씨이지만 중2의 진심이 담긴 글이다. 누가보아도...
그리고 자기에게도 소중한 싸인볼을 선물로 놓고 갈 생각을 했다니 더욱 감동이다.
이 맛에 교사를 했던 것이다.
나의 실험 중심 수업을 좋아라해주고
쏙쏙 이해되게 가르쳐준다고 고맙다고 하고
시험은 명확한 것만 나온다고 평가해준
나에게 힘을 준 제자 녀석들이 있어서
나는 그 긴 시간을 즐겁고 의미있게 보낼 수 있었던 거다.
돌이켜보건대 그런 의미에서는 나의 첫 해 제자들의 역할이 가장 컸다.
서툰 신규교사의 노력을 알아봐주었고(함께 예비 실험을 해주었고 고민을 나누어주었다)
되도 않는 자작 유머에 즐거워해주었고(그 시대별 유명한 프로그램이나 방송에서 힌트를 찾아서 나름 심도있게 만든 것이었다.)
나의 조금밖에 없는 미모(?)를 칭찬해주었고(한때 나를 소피마르소나 최진실에 빗대어 수업하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뿐이다.)
꾸준히 나와 함께 성장해주었다.
그들의 격려가 없었다면, 지지가 없었더라면 나는 이곳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 다시금 그들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지금까지 얼굴을 볼 수 있는 녀석들이 있는 것도 행복한 점이다.
오늘은 그나마 많이 발전해서 딸기, 귤, 한라봉, 사과까지 하나씩을 먹는 식투쟁중이다.
환자들에게 왜 과일을 보내는지 그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나마 그래도 입이 소태일 때 접근성이 있는게 과일이었다.
엄마와 아버지 그리고 외삼촌까지 마지막으로 입으로 드셨던 과일은 얇게 아주 얇게 저민 사과였다.
그 손톱만한 크기의 사과도 여러번에 나누어서 힘겹게 씹으셨었더랬다.
왜 자꾸 아프면 그 분들 생각이 나는 것일까?
엄마를 위해 사과를 깍던 그 때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사이즈가 조금 만 커도 잘 못 넘기셨다. 그 이유도 알것 같다.
먹는다는 것이 에너지를 얻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많은 양의 에너지가 소모되어야 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말이다.
아프면 마음이 이렇게 센치해지는 법이다.
아까 저 사진을 봤을때도,
지금 사과를 얇게 잘라 먹으면서도
울컥하는 하루이다.
그래도 내일은
1학년 각 학급별로 덕수제 안내하고(조회시간)
부장회의 하고
2학년 4시간 수업은 모두 전자기회로 키트 만들기 하고
덕수제 외부 찬조줄연진 수당 정리하고
밴드부 연습시키고(자리만 만들어놓으면 이제 알아서 잘 한다.)
간식 햄버거를 사러 나갔다 오면 된다.
내일은 덜 춥기를(아이쿠야, 찾아보니 더 춥구나. 단단히 싸매고 나서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