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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늙지는 않겠다.

이 시점에서의 나의 다짐

by 태생적 오지라퍼

늙는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잘 보이던 것이 보이지 않고

잘 들리던 것이 들리지도 않고

잘 되던 것이 되지 않는다.

늙어봐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다.

그리고 이제 갓 60대 초반인 나도 모르는 더한 것들이 많이 있을 것이라 짐작되지만

이 시점에서 나의 다짐을 써본다.

적어도 이렇게 늙지는 않겠다고.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크게 소리 내면서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겠다.

큰 통화와 대화 소리(안들려서 그런 줄은 알겠다만)

쿤 소리로 설정한 카톡이나 전화 통화음 소리

(급한 통화도 대부분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유튜브나 노래를 소리 켜고 듣는 일들

(왜 그러는 것일까? 정녕 알 수 없다.)

이런 것들을 절대 하지 않겠다.

물론 늙은이가 아닌데도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가끔 있다만

늙었으니 이렇게 해도 되겠지 하는 그런 안일한 마음은 절대 갖지 않겠다.

물론 지하철 임산부석에도 앉지 않겠다.

이 나이에 임산부가 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나는 한참 전 자궁 근종으로 인해서 적출 수술을 받은 사람이다.

의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임산부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말라는 것은 규칙이나 예의로 정해진 것은 지켜주어야 마땅하다.

나는 그것을 잘 지키라고 수십년간 이야기한 교사 출신이다.


식당에서 자꾸 젓가락을 놓치는 일이 생긴다.

어제 점심에도 그랬다.

어제는 식당에 사람이 많아서

2인 좌석에 3인이 앉았고

테이블에 그릇이 꽉 차있어서 였다고 변명을 해본다.

그리고 자꾸 음식물을 조금씩 흘리게 된다.

식당에서 주는 앞치마를 꼭 입고 식사를 하겠다.

손의 근력 부족때문인지 입의 능력 저하 때문인지는 분명치 않다만

바쁜 식당 피크 타임에 종업원의 업무를 보태주는

그런 일을 하지 않게 열심히 노력해보겠다.

그리고 가급적 식사 피크 타임을 피해서 식당을 가려한다.

직장인이 우선이다.

그 짧은 시간에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양치질도 해야하니 말이다.

그 시간을 피해서 약속을 잡으면 된다.



길을 못찾아서 주변의 바쁜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보는 일을 하지 않겠다.

지도 보는 능력도 늘리고(늘어날까는 모르겠다. 어머니를 닮아서 본태성 길치이다.)

처음 가는 곳은 더 일찍 가서 20분쯤 헤매이더라도 충분히 시간 약속을 지킬 수 있게 하고

(지금도 그렇게 한다만)

그래도 길을 못 찾을 경우는 나이 지긋하고 바빠보이지 않는 사람을 선택해서 조심스럽게 물어보려 한다.

이런 일을 없애려면 새로운 곳에 가지 않으면 되나

그건 아직 포기하기에는 이르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눈빛이 나오지 않게 열심히 노력해보겠다.


너무 덥고 춥고 눈이나 비가 많이 올 때는 꼭 집에 있겠다.

더운 날 남산 한 바퀴를 돌다가 쓰려졌다는 지인도 있고(멀리서 바라보고 사진만 찍겠다. 덥고 추운 날에는)

눈 오거나 비온 날 나갔다가 미끄러져 골절이 된 지인도 있고

그렇지만 집에 있다가 화장실에서 미끄러지기도 하고

세상일은 한치앞도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지만

최대한으로 다쳐서 민폐가 될 확률은 낮춰보겠다.

질병에 걸리는것을 막을수는 없다면

안전 사고라도 최대한 막거나 피해보련다.

어딘가를 다치면 누군가의 도움이 꼭 필요하게 된다.


예전에는 쉽게 하던 일들이 이제는 결코 쉽지 않고

점점 어려워지거나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꼭 인지하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것을 쿨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겠다.

주위에 도움을 받는 것에 도움을 주는 그런 눈빛에 익숙해지고 싶지 않다.

특히 하나뿐인 아들 녀석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

인생은 각자도생이다.

누가 나를 대신해 줄 수는 없다.

아무런 약속이 없는 오늘.

나는 냉장고 청소를 하고 식재료를 사고

돌린 빨래를 정리하고 고양이 설이와 투닥거리며

오랜만에 영재고와 과학고 시험 문항을 살펴볼까 한다.

그리고 쓰다 말았던 논문 파일도 찾아볼까 한다.

순전히 머리가 굳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차원으로 말이다.

이렇게 브런치를 작성하는 일도 커다란 의미에서는

치매 방지용 프로그램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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