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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지 않는 혼밥 요리사의 비밀 레시피 136

나의 희망 : 혼밥이지만 잘 먹었습니다. 누구와 함께이면 더욱 좋습니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어제 오전에는 딱히 해야 할 일이 없었다.

논문 읽기를 시작하고 과학 영재 관련 수업 자료를 검토하고

(주말에 가끔 영재 대상의 강의를 할까 준비중이다.

전성기때보다는 훨씬 덜 하지만 아직도 다양한 영재교육기관이 있다.)

여유 아닌 심심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톡이 하나 왔다.

교감선생님이다.

12월과 1월의 치열했던 날들의 자료를 올려달라하셨다.

위와 대장 내시경 했던 건강 검진날과

A형 독감으로 결근했던 날의 병원 자료를

NEIS 복무 상황에 첨부해서 올려야했는데 누락한 것이 기억났다.

5시 반 을지로 3가 약속인데 학교에 4시반 까지 들려봐야 할 명분이 생겼다.

그냥 놀러가는게 절대 아니다.


병원에 들러서 그 날의 진료 확인 자료를 발급받고

퇴근 시간 무렵 학교에 들렀더니

지원사님 3분만 학교를 지키고 계신다.

지금 교무실은 난방까지 고장나서 추위와

신학기 준비 업무와 투쟁중이셨다.

학교는 이 분들의 헌신과 도움이 없으면 잘 돌아가기 힘들다.

3월 새학기 준비는 더더욱 그렇다.

자료를 스캔하여 USB에 담고

실비보험에 보낼 자료를 프린트하고 나오는 길에

오랜만에 야구부 녀석들이 연습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전체는 아니고 일부만 추가 연습을 하는 듯 했다.

멀리서 보니 체구가 3학년 올라가는 나와 수업한 녀석들이 아닌듯 조금 작아서 그냥 지나치려는데

한쪽 끝에서 방망이 돌리고 있던 세 녀석이 인사를 꾸벅한다.

작년 1년간 나랑 과학 수업을 한 녀석들이다.

교실에서는 분명 개구쟁이인데

야구 선수 옷을 입으면 진지해지는

180도 달라지는 신기한 마법이 있다.

야구부 녀석들을 못보고 마무리하는게 다소 아쉬웠는데 몇 명이라도 얼굴을 보니 마음이 짠했다.

야구 잘하면 응원하러 시합 보러가겠다 했다.

1회전 콜드패 이런 것은 안된다고 했다.

1회에 7점 내주는 피칭과 수비는 절대 안된다 했다.

세 명에게 이야기했으니 아마 내일이면

모든 녀석들에게 전달이 될 것이다.

야구부에 비밀은 없으니 말이다.


그러고도 약속 시간이 남아서

을지로 4가에서 3가까지 천천이 걸었다.

지하도로로 걸을 수도 있지만

언제 이 거리를 또 눈에 담겠나 싶어서

다소 추웠공사중인 곳도 많았지만

조명가게, 페인트 가게, 각종 공사업체 그리고 중간중간에 있는 식당들을 지나면서 구경을 했다.

알고 있었던 곳들과 그 사이에 바뀐 곳들이 보였고 유명한 흑백요리사에 나왔던 분의 맛집도 있었다.

원래 있었던 곳인데 내가 지금 인지한 곳인지는 모르겠다.

조만간 한번 가봐야겠다.

3년 을지로 생활을 했지만 아직도 못가본 곳이 엄청 많다.

을지로 골목 골목들은 그렇게 신기하다.


그리고 한번 가봐야지 했는데 못가봤던 곳 중 하나인

북카페에 들어섰다.

마침 오늘 저녁 식사 장소 바로 옆이더라.

책도 팔고 도서 출판 기념 모임으로도 유명한 카페인데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책보다 꽃들이었다.

<꽃은 시작부터 끝까지 다 다른 매력이 있다 : 김성근> 라는 멋진 말을 오전에 듣고 왔던 참이다.

내 생각도 역시 그러한데

이 카페는 다양한 종류의 식물들이 잘 배치되어 있었다.

오랜만에(언제 책을 샀었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책을 한 권 구입했다.

[부부가 둘 다 잘 먹었습니다.] 라는 제목의 소소한 집밥과 먹거리 이야기이다.

마치 내가 브런치에 작성중인 [늙지 않는 혼밥 요리사의 비밀 레시피]와 비슷한 결의 책이다.

이 책을 잘 읽고 벤치마킹하고 차별화 전략을 세우고 자신감을 확보하여 나도 책을 준비할까 생각했다.

제목은 잠정적으로 정했다.

[혼밥이지만 잘 먹었습니다.]

그렇지만 함께 먹는것을 훨씬 더 선호합니다.

앞으로 퇴직 후 내 생활의 기본 모토이다.

잘 먹어야 건강을 지킬 수 있다.


오랜만에 만난 같은 학번, 같은 학교 교사 모임의

주된 이야기 주제는 아프지 말자였다. 그게 맞다.

잘 먹어서 건강을 유지하고 아프지 않아야

어제 저녁처럼 유쾌한 옛날이야기를 나누면서 웃을 수 있게 된다.

오랜만에 만나도 오래된 사이가 주는 편안함이 있다.

너무 젊었을 때 만난 사이니 이제는 얼굴을 보면

너무 늙었다는 아쉬움도 있다.

자식들 결혼 걱정과 누구 누구 아프다는 이야기말고 즐겁게 사는 방법 이야기를 나누게 되기를 희망한다.

그러려면 혼밥이지만 잘 먹고 잘 버텨 나가야 한다.

내 혼밥 식단 사진을 찍어두려 마음먹었다.

그래야 정성껏 준비하고 먹을 것 같아서 말이다.


오늘 먹은 다소 친숙하지 않은 메기매운탕은

국물이 깔끔했고

수제비와 야채의 양이 많았으며

새우랑 잡어들을 잘게 잘라 튀긴 것은

기름지지 않고 바삭한 과자 같았고

대파김치와 갓김치는 맛났고

알타리 김치는 신기한 시원한 맛이었다.

나 혼자서는 다시 방문하기 힘든 식당이지만(메뉴의 특성상)

소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추천해주고 싶은 곳이었다.

그런데 식당에서 내려오는 계단 경사가 매우 급하여 조심할 필요가 있는 곳이다.

주변에 계단에서 넘어졌다는 사람들도 꽤 있다.

물론 나는 평지에서도 넘어지기는 한다만...


(디저트는 아까 그 북카페에서

따뜻한 자몽 원액차와 당근 케잌을 맛나게 먹었다. 수다가 더 맛나긴했다.

그런데 그 카페도 화장실 계단 경사가 급했다.

을지로 옛 건물의 특징인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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