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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관과 미술관의 사소한 차이

모든 일은 평가받게 되어 있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어제는 과천과학관을 다녀왔는데

오늘은 미리 계획한 것은 아니지만 미술관을 방문했다.

원래 계획은 정동전망대에 올라가서 덕수궁을 오랜만에 내려다 볼까했는데 문을 닫았더라.

휴일이라 더 많은 사람이 방문할 수 있을텐데 아쉽다. 나처럼 걸음을 돌리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리고는 옆에 있는 미술관에 들렀다.

문은 열었는데 관람객이 거의 없다.

관람객 숫자와 전시 스태프의 숫자가 거의 비슷할 정도이다.

저 사진 속의 모니터에는 백남준의 작품이 돌아가고 있었던 것 같은데 비어있다. 언제부터일까?

같은 국가기관급인데 어제 과학관과 오늘 미술관은

왜 이리도 방문객 숫자가 차이나는 것일까?

어제 과학관은 직원들의 정상 근무 수준이었는데 미술관은 당직만 근무하는 느낌이다.

3월 1,2,3일이 연휴가 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닌데 각 국가기관급마다 대처는 다른 듯 하다.

연휴에 볼거리와 놀거리를 제공하는 것도 유관 국가 기관의 역할이다.

그리고 그것이 경제를 살리는 길이다. (대체 휴일을 잡은 이유가 아니더냐)

공무원이 힘들면 일반 국민이 즐거워진다.

내 이야기가 아니라 돌아가신 친정 아버지 말씀이다.

수능 감독을 하느라 새벽에 일찍 나가고 너무 힘들다고 투정했더니 정색을 하시면서

<그럼 그 일을 공무원이 안하면 누가해야겠나? 그래서 공무원이 힘들지만 훌륭한 거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이후 나는 수능 감독이라 힘들다는 이야기를 어디에도 하지 않았다.



세 명의 서울 과학교육을 책임지고 나갈 멋진 후배교사를 만나기로 한 점심이다.

한 명은 방금 박사학위를 받은 물리과,

한 명은 어엿한 영재고 중견 물리과,

마지막 한 명은 우주 최강 박학 다식 지구과학과이다.

다들 한 번씩은 서로 얼굴 본 적은 있으나

나를 매개체로 이번 기회에 생산성 높은 네트워크를 만들기를 기원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박사취득 축하 밥을 기꺼이 샀다.


오늘의 식당은 새로 만들어진 곰칼국수 식당이다.

곰곰 생각해보니 예전에 우리가 많이 갔던 한식당집이었던 자리이다.

가격이 가장 적당하여 김치찌개, 된장찌개, 순두부찌개와 달걀찜을 주로 먹었었고

친절한 사장님 덕분에 학생들과의 행사 이후에 식사도 같이하기 딱 좋은 곳이었는데

바뀐 식당은 멋진 공간 디자인과 차별화된 식당 메뉴로 단번에 핫플로 등극한 것 같다.

가격은 물론 옛 식당보다 올랐다만.

조금은 씁쓸한 일이지만 세상 일이 변하지 않는 것이 어디있겠나.

옛날을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적어도 오늘 만난 우리 넷은 옛 식당의 이름과 맛을 기억 하고 있다.) 다행인 날들이다.


오늘 이 모임을 마지막으로 1월부터 이어진

나의 정년퇴직 축하 모임은 모두 마무리 되었다.

축하를 보내주었던 많은 후배들과 동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글은 없다.

아니다, 나의 글솜씨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맞겠다.

그들과 나누었던 음식들의 맛을 기억하는 것처럼

그들의 격려와 위로를 기억하는 것처럼

감사함과 고마움을 오래토록 기억하겠다.


박사 논문(양자물리학 관련이다. 읽기에 다소 어려울 예정이다.)을 받아서 집으로 돌아와서는

최애 프로그램 <김성근의 겨울방학>을 돌려보았다.

감동과 재미. 두가지를 다 잡기는 참 힘든 법이다.

이 프로그램은 두 가지가 다 있다.

시청자인 내가 평가한 것이다.

수업도 마찬가지이다.

재미와 의미를 모두 느끼게 구성하기는 쉽지 않다.

나의 수업에 두 가지를 다 넣어보려고 평생 노력했었다.

잘 되었는지는 학생들이 평가해주는 것이 맞다.

같은 공휴일인데

사람이 붐벼대던 과학관과

많이 썰렁했던 미술관과의 차이점은

방문객들이 평가해줄 것이다.

하루 만에 다시 겨울로 회귀한 요상한 날씨에도 정동길은 언제나 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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