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 좋은 날
아침 공항 가는 지하철에서 바로 앉는 행운은 없었으나
9호선 급행 열차를 단박에 탔다.
바이오 인증을 받아두었더니 공항검색대 통과까지 물흐르듯 지나간다.
야채 김밥 다섯 알은 먹고 다섯 알은 남겼더니
배부른 정도가 비행기타기에 딱 좋았다.
비가 내려 미술관부터 가려고 택시를 탔는데
택시에서 담배 냄새도 안나고
비슷한 연배의 기사님이 맛집부터 내려주셨다.
11,000원에 고등어조림, 갈치구이, 성게 미역국이라니.
그리고 나처럼 고사리 해장국, 고기국수, 몸국 맛을
잘 모르는게 지극히 당연하다고 이야기해주셨다.
갑자기 내 입맛에 대한 신뢰도가 급상승한다.
숙소는 오층이지만 오션뷰이고
같은 계열 호텔에 회원가입이 되어있다고
(옛날 옛적에 한 것이라 기억도 못했는데)
커피 쿠폰 두 장을 끼워주었다.
다섯시에 만나기로 한 친구도 나도
약속보다 일찍 나오는 편이라 십분이나 먼저 만나
맛난 제주 돼지고기를 배불리 먹었다.
이 멋진 바다를 끼고
가랑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분위기 묘한
애월한담 해변가를 걷는 사람은 우리 둘 밖에 없었고
각각 남편 흉을 한 바가지씩 보고 났더니
먹은것 소화까지 완벽하게 끝났다.
오늘 혼자였던 시간에도 적당하게 톡이 와서
나를 외롭지 않게 해주었고
무엇보다도 점심먹고 미술관까지
삼십분 정도의 나홀로 산책에
해가 반짝 비춰주어서 너무 좋았다.
오늘 제주 내가 다닌 곳곳은 마치 전세낸것처럼 한가롭고 평온했다.
이렇게 운수 좋은 날을 내일 또 기대해본다.
너무 욕심일까?
(오늘 제일 운수 좋았던 일을 빼먹었다.
외투 주머니에 넣어둔 카드를 흘렸는 줄 알고 혼비백산하여 분실 신고하려다가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서 찾았다.
운수는 좋은데 정신은 좀 차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