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숙소 찾기
아마도 일생에 처음 가본 호텔이 지금도 있는 해운대 5층 정도 낮은 그 호텔일 것이다.
대학 4학년 졸업여행때 였다.
과학교육과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전공이 함께 움직이는 큰 여행이었다.
기억에 기차로 부산까지 내려온 후
1박을 해운대에서 하고
7번 국도쪽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강원도를 보고 가는 강행군이었다.
그때 교수님들께서 으쌰으쌰해서 졸업여행을 구성해주신 것이라는 것은 한참 뒤에서야 알았다.
쉽지 않은 일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100여명의 여학생들을 인솔하신다는 것이.
특히 내가 과대였던 지구과학전공은 이미 3학년때 교수님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제주도 수학여행을 단독으로 다녀올만큼 말 안듣는 전공이었으니 말이다.
그 때문에 나는 교수님께 미운털이 박혔었다.
처음 가본 호텔의 격조에 놀랐고(지금도 겉모습은 비슷하다.)
해운대 바다의 멋짐에 놀랐고(처음 본 것은 아니지만 매번 멋지다.)
뒤편으로 난 동백섬까지의 산책 코스에 마냥 기뻤던 40년전 그 날 그 코스를 복기하면서
어제 아침 그 길을 다시 걸어보았다.
나는 늙었지만 그 길은 연륜과 식물이 보태져서
더 멋졌다.
아들 녀석을 출산하고 돌이 되기 한달 전인
1989년 8월에 여름휴가로 해운대를 찾았었다.
아들 녀석의 첫 비행기 탑승이었고
(울지는 않았는데 놀란 것은 같았다. 잘 줄 알았는데 안자더라)
그때는 예약 시스템이 없었는지 우리가 몰랐던 것인지 숙소는 닥쳐서 알아볼 셈으로
무작정 부산에 왔던 철없는 부부와 1살배기 아기였다. 미쳤었나보다.
(아니다. 정 안되면 고모네 집 신세를 지면 되겠지 했었던 것 같다.)
이미 비행기에서 너무 긴장을 하고 있었는지
내가 너무 지쳐서
해운대로 오는 리무진을 타고는 제일 좋은 호텔에 가자했다.
그 당시 최고였던 P 호텔이다.
뻘쭘하면서 호텔에 들어가 객실이 있는지 물어보니
8월 휴가 피크철이라
이그제큐티브룸만 남아있다했다.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일단 더위와 고행에 지쳐서
그 객실이라도 하겠다 했고
높은 층까지 올라와서 보는 멋진 뷰와 하얀 침대 시트에 나와 아들은 기분이 좋기만 했다.
지금도 그렇고 그때도 절약을 넘어서 소비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남편은 그렇지 않았나보다.
짐을 놓고 점심을 먹으러 나갔는데 해운대 뒷골목을 돌고 돌다가(몹시 더운 날이었다.)
결국은 허름한 중국집으로 들어갔고
탕수육도 아니고 짜장면을 시켰다.
그리고 그 식당에는 사방에 파리들이 날라다녔다.
1년에 한번 휴가이고
아이를 낳고 육아하느라 힘든 나에게
멋진 선물을 주기는커녕
파리가 날라다니는 식당에 짜장면이라니
그리고 그 더운날 선풍기 한 대만 소리를 내면서 돌아가는 그 식당이라니
(요새는 다시 복고라 옛날 감성 식당이 유행이라하지만 그때의 나는 절대 아니었다.)
나는 서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해서
아마도 그날이 신혼 초에 가장 대판 싸운 날이 아니었나싶다.
그리고는 기분이 나빠져서 짜장면에 손도 안대고 호텔로 돌아왔는데
객실 가운데 음식들이 제공되는 멋진 공간이 있는거다.
비싸겠지 싶어서 안먹으려다가
배가 너무 고파와서
(그때의 나는 뚱뚱했었고 식탐 만발이었다.)
창피함을 무릅쓰고 가격이 얼마냐고 물어보았더랬다.
아이고야. 이그제큐티브룸 숙박 고객에게는 무료로 제공되는 라운지바라는 거다.
그날 나는 그곳의 모든 음식을 종류별로 싹쓸어 먹었고 맛난 것을 먹고나니 슬며시 화도 풀렸었다.
그리고는 그 더운 날 에어컨이 세상 시원한 그 객실과
멋진뷰가 덤이었던 호텔 수영장에서
(정작 해운대 바닷물에는 살짝 발만 담그고)
아들과 함께 한 첫 여름 휴가를 해피엔딩 호캉스로 마무리 하였다.
어제 산책에서 그 호텔을 한번 올려다보았다.
맨 윗층에서 두 번째 정도 아래층이
그때의 내가 있었던 곳이다.
여름방학에 아들 녀석과
그 당시 대학생이었던 제자들 10여명과 함께
부산 여행을 온 적이 있다.
기차로 경주에 내려서 그곳 숙소에서
수영하고 놀이기구 타고 자전거 타고 밤새 놀고는
다음 날 감포해수욕장에 들러서
모래를 밟고 바다멍을 하다가 해운대로 내려왔다.
차를 타고 오면서 휴가철 해운대에
이리 많은 인원이 들어갈 숙소가 있을까가
내심 걱정이었다.
경주 숙소는 예약을 하고 간것인데
해운대는 가서 구한다는 무대뽀 정신이었다.
그때만 해도 민박집들이 많이 있었을 때였다.
그런데 민박집보다 새로 생긴 호텔이 더 숙소 구하기 쉽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 것은 해운대에 내려서였다.
그리고 그 예감은 적중해서 다행히 제법 큰 방을 구했고
거기서도 우리는 다양한 게임과 벌칙과 수다와 웃음이 함께하는 시간을 보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해운대 바닷가를 걸으면서
햄버거로 점심을 때울 때(돈이 많이 없었다)
머리와 옷 위로 비둘기똥의 난사를 받았던
그 난감했던 기억은 선명하다.
요즈음 <김성근의 겨울방학>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그때 생각이 난다.
아마도 나는 30년쯤 전에 이미 <김선생의 여름방학> 프로그램을 구현했던 것은 아닐까?
물론 겨울에 스키장에 간 적도 있었다만은...
어제 아침 산책 때 그때 그 숙소를 찾아보고자 기억을 집중해보았으나 결국 실패했다.
어디쯤이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고 애매했다.
그렇지만 그날의 즐거웠던 기억은 내 뇌리에 분명히 각인되어 있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그날 나와 함께한 녀석들도 그렇게 기억되고 있었으면 참 좋겠다만.
해운대는 그렇게 나에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