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흉본 사람들
옷에는 잘못이 없다. 입은 사람이 이상한 것이다.
비싼 옷은 못 입어도 패션 센스는 있다고 자부하면서 살았다.
체형이 멋지지 않아서 그렇지 옷걸이가 괜찮다는 소리를 듣고 살았다.
다른 미술 영역은 잘 못해도 디자인과 색 부분만은 감각이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전문가에게 확인받은 사항은 아니다.
나를 절망시킨 남편의 한 마디에 대해 쓰고 났더니(이전 글을 읽어보시라.)
동료와 아들 녀석에게도 패션에 대한 쓴 소리를 들었던 생각이 났다.
먼저 동료 버전이다.
나랑 나름 친했던 같은 교과 남자 후배였다.
심한 입덧으로 내 생애 최저 몸무게를 매일 갈아치우며(이러다가 죽겠구나 싶었다.)
엄마가 끓여준 곰국을 보온병에 담아 간신히 그것만을 먹고 버티고 있을 시기였다.
옷 색깔을 맞출 힘도, 새 옷을 사러갈 힘도, 어떤 옷이 있었던가를 생각하는 힘마저도 없었던
그 시기 어느 날에 아마도 거의 엉망진창의 옷으로 출근을 했었나보다.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곰돌이가 그려진 아래 위 보푸라기 비스무레한 재질의 옷이었다.
그 후배가 한 마디 했다. “ 이런 옷이 요새 유행하는 잠옷 패션인가요? ”
아마도 그는 너무도 기력 없어 하는 나에게 잠시 웃음을 주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나의 입덧이 끝난 것처럼 머리를 스쳐가는 창피함이 있었다.
비슷한 느낌의 이야기를 아들 녀석에게 들었던 때는
늦게 시작한 박사과정 첫 학기 기말고사를 마치고 링거를 맞아가며 출근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 엄마. 지금 슈퍼에 장보러 가는 것 같아. 나 학교에 그렇게 입고 수업 들어오는 선생님 싫은데...”
직설화법의 T 인게 틀림없다. 아들 녀석은...
그날 부랴부랴 옷을 갈아입고 뛰어서 출근하느라 숨이 턱에 찼었다.
나는 옷이란 사치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절대 아니다.
그러나 시간과 장소에 맞는 옷차림을 추구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 정도의 노력은 예의이고 타인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그 이후에는 나에게 패션 지적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도 내 옷차림에 그렇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는 것일 수도 있다.
남편, 후배, 아들의 촌철살인 한마디가 옷을 입으면서 잠깐은 긴장하는 삶을 만들었다.
가끔은 직설화법이 필요할 때도 있는 법이다.
물론 듣는 순간에는 참을 수 없을 만큼 열불이 나지만 말이다.
옷에는 잘못이 없다. 입은 사람이 이상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