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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듣기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어제 넘어지거나 미끌어지거나 엎어졌던 이야기를 썼더니

나의 첫 해 제자에게 답글이 달렸었다.

<최근 일이년 사이 선생님도 잘 아시는

채군은 계단에서 미끌어져 척추뼈에 금이 갔고,

김군도 계단에서 미끌어져 뇌출혈에 쇄골골절,

이군은 차문에 찧어 눈썹 자상,

잠깐 한국 나온 최군은 술먹고 넘어져 얼굴을 갈았습니다. 돌아 댕기질 말아야 하는건지...>

다쳤다는 이야기를 그 당시에 듣지는 못했던 터라 놀랍기만했다.

다들 조심들 하자. 술이 웬수이다. 이제 술을 멀리할 나이들이 되었다.

첫 해 제자들은 나보다 딱 열 살이 작다.


저녁에는 오늘 만남을 미루자는 톡이 들어왔다.

세명의 만남인데

나보다 조금 연상인 박사님은 이빨이 붓고 아파서 치과가서 발치했다 하시고

(임플란트까지의 엄청 험난하고 아픈 길이 남아있을 것이라 추정된다.)

세상 건강한 태릉인 스타일의 조금 후배님은

지난달에는 눈에 난 다래끼로 고생한다더니

이번 주는 입술이 붓고 물집이 크게 생겼다고 힘들다한다.

약을 바르고 먹고 한다면서 쉬어야겠다고 한다.

쉬는게 맞다.

수영, 필라테스, 마라톤까지 하면서

본업 일을 하는 것은 무리이다.

계속 무리라고 이야기 해주었는데도

자신의 체력과 건강을 자신하다보면

이런 사소한 아픔이 생기게 되어 있다.

인간의 에너지 총량은 결국 비슷하다.

차이가 그다지 크지는 않다. 슈퍼맨이란 있을 수 없다.


저녁에 아들 녀석과 짜장면을 나눠 먹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에버랜드 수영장과 놀이동산은 기억하지 못하면서 남편의 퍽치기 사건은 기억하고 있었다.

오목교 현대백화점이 세워지기 전 그 주위는 허허벌판이었고 CCTV 도 없던 시절이었다.

술먹고 늦은 귀가를 하시던 남편이(양복입고 증권회사 다닐때라서 돈냄새가 났었는지)

노상 퍽치기단을 만난거다.

일단 그들은 얼굴을 보지 못하게 안경쓰고 있는 눈에 주먹을 날린단다.

안경이 깨지고 눈에 피가 나면 반응이 현저히 떨어지니 말이다. 범인 얼굴도 볼 수가 없다.

그리고는 유유히 지갑을 열어서 현금만 빼갔다고 한다. 전문가들이다.

늦은 밤이라 다음 날 병원에 가서 눈썹 위를 몇 바늘 꼬맸고 항생제를 투여했고

하필 새로샀던 양복이랑 와이셔츠에는 피가 튀었었다.

와이셔츠와 지갑은 버렸는데(아마 경찰에 신고도 하지 않은 것 같았다만)

양복은 드라이크리닝을 맡겼어도 지워지지않고 표시가 났다.

그래서 오래된 사건도 해결이 되기는 하나보다.

혈흔이 완벽하게 지워지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나쁜 일을 도모하는 사람들은 기억하시라.)

아참 그 이전에도 술먹고 미끌어져서 다리뼈에 금이 간 적도 있었구나.

그래도 남편의 술사랑에는 변함이 없더니 이제 결국 위암으로 술과 이별을 고했다.


그 비슷한 시기에 지금은 아파서 꼼짝 못하고 누워만 있는 동생네 아파트에 도둑이 들었었다.

1층이었는데 여름에 답다고 열어둔 베란다로 침입한거다.

아이를 보호하려고 버둥거리는 동생의 얼굴을 발로 밟아서

눈, 코, 입을 알아보지도 못하게 만들어 놓았었다.

집에 가져갈 것도 별로 없었는데 말이다.

아마 빈집인줄 알고 들어왔다가 사람이 있고 소리를 치니 놀라서 때리고 도망간 듯 하다.

그때 맞은 얼굴이 그리 금방 붓는 것인지 처음 알았었다.(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한참뒤에 범인을 잡았다는 경찰서 연락이 와서 확인을 해달라했으나

동생은 보고서 무섭고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보복이 두려우니 모른다고 하라는 엄마의 지침이 있었고

그때만 해도 직접 대면이었을지도 모른다만...

그런데 그 엄마가 맞을 때 옆에서 울고 있었던

네 살짜리 조카가 조용히 말을 한다.

<저 사람이 우리 엄마 때렸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똑부러지고 똑똑하다.

아무튼 그 때 남편 생일을 맞아 눈두텅이 부은 남편과

아직 붓기가 채 빠지지 않은 동생이 한 프레임에 잡힌

사진이 있었는데 한번 찾아봐야겠다.


아프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듣기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만

주변의 사고 소식을 듣고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라는 교훈을 얻을 수는 있다.

술을 줄이고(아예 먹지를 않는다.)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고(졸려서 못한다.)

가급적 혼자 다니지 말고(이건 쉽지 않다.)

절대 무리하지 말고(무리하고 싶어도 무리할 일이 없다.)

날이 덥다고 문을 열어두지 말고(요새는 에어컨이라 그럴 일이 없겠다만)

계단 오르락 내리락 할 때 특히 조심하는(가급적 가장 끝자리로 다닌다. 비상시에 난간을 재빨리 잡을 수있는 반경내를 가급적 고수한다.)

신호가 끊길것같다고 지하철이 출발할것 같다고 절대 뛰지않으며(내 달리기 전성기는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

그런 하루를 보내야겠다.


(대문 사진의 저 아기새는 안전한지 모르겠다. 아슬아슬 줄다리기 중이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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