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든 떠날 준비 완료
출근을 하지 않으니까 격식을 차려서 옷을 입거나 가방을 들거나 신발을 안 신어도 된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한편 자유로우면서 한편 서운하기도 하고
평소 자칭 패셔니스타 스타일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생기기도 한다.
매일 출근하는 것이 아니니 옷이나 가방, 신발이 뭐 필요하겠나 싶다가도
산책이 중요 일과인 은튀 후 생활에도 준비할 것이 있기는 하다.
옷은 평소처럼 입고 다녀도 아직까지는 별 어려움이 없는데 가방은 차별화가 조금 필요하다.
갑분 쇼핑이 절대 아니다.
얼마전부터 계획적으로 품목과 디자인을 눈여겨 보고 있었다.
산책에 무슨 가방이 필요할까 싶지만
어디든 기본적으로 가지고 다녀야 할 필수품이 있다.
보통 한 시간 내외, 8,000보 이상을 걷는 나의 산책 스타일에 필요한 것들이다.
핸드폰, 카드 한 개 정도(물론 핸드폰 안에 카드 한 개를 내장해두기는 했지만 안쓰는 곳도 있다.),
립밤과 나의 만병통치 진통제, 이어폰(에어팟 아님)이 최소한의 그것이다.
그런데 평소 들고 다니는 가장 작은 사이즈의 에코백을 들자니 15% 이상하다.
작은 사이즈의 에코백은 대부분 손으로 들고 다니는 형태이다.
한 손이 불편할 뿐 아니라(그래서 지난번에 앞으로 미끄러진 것 같다고 괜한 핑계를 대본다.)
산책인데 산책이 아닌 느낌을 준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작은 손으로 드는 에코백은 들고나면 왜 그런지 교회나 성당을 가야할 것같은 그런 묘한 느낌이 든다.
에코백인데 어깨에 멜 수 있는 형태는 대부분 사이즈가 더 크다.
어깨에 에코백을 메는 순간 나의 얼굴 나이와 가방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조금 들긴한다.
순전히 내 생각이다.
어깨에 매는 에코백은 푸릇푸릇한 대학생의 몫이다.
영화에서 나오는 여주인공 대학생의 모습이 너무 강렬하다.
그리고 조금만 짐이 많아지면 오십견에 통증이 생긴다.
등에 지는 베낭 형태는 등산맞춤형이지 산책에는 너무 과하다.
그러다보니 마지막 버전은 크로스백 스타일만 남는다.
해외 여행시 여권가방 스타일과 매우 비슷하다.
그런데 가죽 재질의 가방은 산책과 어울리지 않고
가죽으로 만든 크로스백은 명품도 있는데 요새 다시 젊은 층에서 유행이다.
그것을 원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나이가 들면 무거운 것이 가장 힘들다.
가벼워서 나의 어깨에 부담을 주지도 않고
더러워지면 세탁도 간단하고
그러면서도 너무 싸구려 같아 보이지 않으며
비닐 재질은 더우면 피부에 들어붙으니 안되고
색도 포멀하면서 그렇다고 튀지는 않으면서 세련되고 값싼 것을 찾고 있었다.
내가 돈이 없어서 그렇지 눈이 낮은 것은 결코 아니다.
오늘 드디어 그것을 발견했다. 순전히 내 기준이다.
최소한의 비상품이 다 들어가면서
(물론 핸드폰은 손에 들고 다닐 확률이 크다만. 사진 촬영 관계로... 그래도 비가 올 때 대비해서 가방에 들어가기는 해야한다.)
어깨에 크로스로 매어주는데 부담이 별로 없는데다가(가볍고 끈 길이가 조절된다. 내가 좋아라하는 센스있는 길이가 있다.)
이어폰을 따로 보관해주는데 어느 가방에나 옮겨달 수 있는 것까지
(키링 역할도 한다만 이어폰을 쉽게 찾기 위한 나의 고심 끝의 선택이다.)
구색을 맞추어 세트로 구입한 것이다.
그린색 계통으로 할까 고민하다가
평소 검은색 계통의 무채색 옷을 선호하는 나의 취향에 깔맞춤한다.
나이들수록 원색을 좋아하게된다는 말은 나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역시 쇼핑은 잠자던 나를 춤추게 한다.
금융 치료라는 말이 딱 맞는다.
조금의 우울함이 날라간다.
이제 저것을 매고 어디든 갈 수 있겠다.
공식적인 곳 빼고는 말이다.
그런데 저 안에 들어갈 카드 지갑이 하나 필요할지 않을까?
갑자기 그 생각이 나기는 하는데
카드 지갑이라도 조금 유명 브랜드 것을 사야할 것인지는 고민을 더 해보겠다.
명품도 하나 없는데 말이다.
금융 치료는 더욱 큰 금융 치료를 불러온다는 것이 문제점이기는 하다만
어디든 떠날 준비를 완료했다.
어르신 생활 입문 - 가방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