깁스는 결코 훈장이 아니다.
어제 목동에 가서 아픈 동생을 살펴보고
(어쩌면 친정엄마와 그리 닮은 것이냐. 아픈 병명도 똑같으니 유전의 무서움이란 섬찟할 정도이다.)
막내 동생과의 점심을 위해 걸어가다보니
아들 녀석이 지금까지 유일하게 기브스를 하게 되었던 그때 그 사고 장소를 지나가게 되었다.
여느날과 다름 없는 평범한 날이었다.
나는 정시퇴근을 했고(그 당시는 초과근무라고는 1도 몰랐던 시기였다.)
직주근접이었으므로 아마도 오후 다섯시가
채 안되었을 시간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아들 녀석은 할머니집에서 숙제를 하고 있었던지
아니면 무슨 무슨 학원에 갔다가 돌아왔을 수도 있었을 게다.
그 당시 한창 몰입하고 있었던 바퀴 네 개가 달린 스케이트보드를 타고서
자신의 턴 실력을 뽐내면서 집으로 돌아오던 중이었다.
집이 바로 보이던 입구에서 균형을 잃고 넘어지려고 비틀거린다.
몇 발자국 아들 녀석의 가방을 들고 뒤따르던 내가
채 잡아주기도 전에 순식간에
아들 녀석은 땅을 손으로 집고 나동그래진다.
그런데 언제 넘어졌나는 듯 괜찮다는 듯 금방 일어난다.
혼날까봐 무서웠던게다.
무릎팍이 깨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 생각하고
저녁을 먹고 그렇게 잠이 들었다.
그런데 쎄한 느낌이 든다. 촉이 발동한다.
아들 녀석 한정 촉이 있다. 엄마들에게는...
잠이 든 아들 녀석 이불을 잘 덮어주려갔다가 슬쩍 팔을 만져본다.
자는 것이 틀림없었던 아들 녀석이 비명소리를 지르며 아파한다.
무슨 사단이 난 것임에 틀림없는데
다행히 많이 부어보이지는 않았다.
다음 날 친구 외과를 방문한다.
아니나 다를까 실금이 갔단다.
부러지지 않은 것이 어디냐. 그렇게 마음을 비운다.
정성스럽게 깁스를 해준 친구에게 감사한다. (사단이 날때만 방문했다. 미안하고 고맙다.)
깁스를 하는 것도 푸는 것도 많은 힘이 드는 작업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래서 외과의사에 여자가 별로 없는 것이었나보다.
외과의사에게는 강력한 힘이 필수적이다.
그리고는 2주 동안 아들 녀석은 그 깁스한 팔을 무기처럼 훈장처럼 흔들고 다녔다.
물론 학교에서 친구들은 깁스 전체에 낙서를 해두었고
(지금도 그 전통은 이어진다. 왜 인지는 모른다. 위로가 되려나?)
여름인데(지금쯤 되었던 것 같다.)
씻지 못해서 고약한 냄새는 뿜뿜 나고 가렵다고 긴 나무막대를 넣어 긁어대고
평소하던 것보다 운동량이 줄어서인지 살은 뿌럭뿌럭 쪘었다.
대망의 깁스를 푸는 날.
간호사가 정성껏 깁스 푼 팔을 고무장갑끼고 수세미로 씻어 주었는데
때가 때가 그리 많이 나와서 나는 창피함의 극치였으나
해맑은 아들 녀석은 때가 국수처럼 나왔다고 사방에 자랑질을 했다.
아마 지금이라면 이런 장면도 촬영해서 유튜브에 올릴지도 모른다. 조회수 폭발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스케이드보드의 다양한 형태가 아직도 보이는데 참으로 위험하다.
심지어 그것을 타다가 앞으로 넘어져서 앞이빨이 몽땅 부러진 동료 교사도 보았다.
때이른 임플란트를 했다만 두 달 병가를 낼 정도였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을때는 거의 성형 수술을 한 정도로 얼굴 형태가 아주 바뀌었더라.
아들 녀석의 부상 일기인데 남편 이야기를 써도 되나 싶지만
아들 녀석의 팔 부상 이슈 6개월 후쯤 일이다.
연말이었다. 연속 술자리였다.
남편은 그 당시 나름 잘나가던 증권맨이었다.
약한 눈이 내려서 살짝 얼어붙은 날이었다.
그런 날이 더 무서운 법이다.
술자리에 갔다가 화장실을 가려고 나왔다가 미끄러졌다고 한다.
별일 아니라는 듯 늦게 귀가하여 자고 신정 맞이 시댁 방문까지 갔었다.
운전은 누가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만 시댁에 갔더니 다리 불편을 호소한다.
나에게는 괜찮다고 병원에 안가겠다고 그리 우겨대더니 말이다.
결국 시댁에서 명절이라 대박인 대학병원 응급실로 이동하였고
이것 저것 검사 끝에 다리뼈 일부가 부러졌다는 진단을 받았다.
나는 인대 늘어남이나 실금 정도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실금 갔던 아들 녀석의 케이스를 보니 부러진 정도로는 저렇게 버틸수가 도저히 없는데
남편은 그때나 지금이나 무지막지하하다.
참는 것인지 통증에 둔한 것인지 도무지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대학병원에서 당장 입원하여 수술을 하자는 것을
자기가 무슨 증권회사 대표인양 새해 시무식에 참여하지 않으면 안된다면서 사인을 하고 퇴원을 한다.
그리고는 또 나의 친구 외과 의사와 상의하고는(창피하다. 몇년전 퍽치기 당했을때 눈 위 찢어진 것도 꼬매주었었다. 우리 가족의 흑역사를 다 알고 있다.)
수술 후 3일이면 퇴원이 된다는 개인 병원을 소개받아 그리로 간다.
대학병원에서는 수술하고 2주일은 입원을 해야한다 했었다. 회사를 그리 비울수는 없다나.
절대 아프다는 말을 안하는 남편도 다리뼈 수술은 아팠나보다.
아프다고 신음 소리를 여러번 냈고 극도의 불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나는 그 한달 정도의 깁스 기간 동안 팔과 다리의 차이점을 극명하게 알 수 있었다.
팔깁스를 한 아들 녀석은 머리감기를 제외하고는 도와줄 일이 그리 많지는 않았는데
다리 깁스를 한 남편은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거라고는 젓가락질 뿐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목발을 짚으면 온몸에 힘을 줘서 근육통이 온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아들 키우면서 깁스 한번 안하는 얌전한 녀석은 없다라는 말은 위로성 이야기이다.
한번 부러진 뼈가 더 단단하다는 말은 과학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는 말이다.
학교에서도 깁스한 녀석들을 자주 보았다.
그리고 대부분 그 다친 경과를 들어보면 아주 사소한 것이다.
잠깐 넘어지거나 균형을 잃거나 한 경우이다.
그런데 그 잠깐의 사고가 나와 내 주변의 일상을 파괴하고 힘들게 만든다.
오늘도 내일도 안전하고 건강과 관련해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들이길 기도한다.
그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잘 안다.
<좋은 일 있으세요?> 라고 물었을 때
<아무 일도 없는 것이 제일 좋은 일이지.> 라고 단호하게 대답했던 선배의 마음에 백퍼센트 동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