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림다방에 들어왔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혜화동 학교에서 농구 경기를 보고
낯익은 제자녀석들을 만나 수다를 떨고
의도대로 연습대로 풀리지않는 경기에 아쉬워하며
(상대팀의 0번 선수가 엄청 잘하더라.
한명의 월등한 플레이어가 경기를 장악할 수 있다.
아마추어들의 경기는 더더욱 그러하다.)
귀갓길에 오른다.
예상했던대로 아그들을 보고
응원 소리를 크게 질러대고
응원온 야구부들과 야구얘기도 하고
중간중간 과학 공부 및 진로 상담을 하고
박수를 크게 쳤더니 기운이 난다.
그럴줄 알았다.
나는 무언가 일하면서 에너지를 만들고
스스로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스타일이다.
토요일 오전 차없는 거리인 대학로인데
그냥 집에 가긴 조금은 아쉽다.
날씨도 어제 비로 덥지않고 상쾌하다.
정상 컨디션이라면 마땅히 주변 산책에 나설테지만
아직 그 정도는 아니고
내일 <불꽃야구> 응원도 있으니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타협을 한다.
추억의 학림다방을 들어가본다.
엄청 오랫만이다.
밖에서 학림다방 안내판 사진만 찍었었지 들어오기는 여러 차례 망설였었다.
오늘은 망설임끝에 그 문을 열고 들어설 용기가 났다.
예전과 다름없는 배치에
오래된 나무 계단의 삐걱거림에
그 낡은 테이블에
그 옛날의 클래식 음악이 나온다.
그때 마셨던 비엔나커피와 제일 유사한 카푸치노를 시켰다.
이른 시간인데도 나처럼 추억을 되살리려는 사람들이 꽤 많다.
멋진 현대풍 카페를 안가고 굳이 이곳을 찾은 젊은이들도 있다만.
나의 공식적인 첫사랑이 이 근처 학교에 다녔다.
사실 어때야 첫사랑인지는 모르겠다만
내가 진심으로 꽤 오랫동안 좋아라했던 사람이니
나혼자 그를 첫사랑이라 이름붙인다.
같이 학림다방에 두어번은 왔던것같고
한번은 겨울이었고
또 한번은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비 내리는 밖을 창문을 통해 내다보는게 멋지다는 걸 그가 알려주었었다.
그렇지만 지금도 비는 별로이다.
아무리 그가 멋있었어도 비를 거부하는 내 마음까지 돌려놓지는 못했다.
의대생이지만 그림그리기가 취미였고
나는 그 친구네 미술동아리 인물화 모델이었고
도자기 굽는데 쫓아가기도 했고
둘이서 영화도 한편 보았으니
여자사람친구와 여자친구의 경계 어디쯤이었을지 모르겠다.
나는 그것이 우정을 넘어서 사랑이 되기를 소망했었고
그것이 되지않을듯한 조짐이 보였을 때
엄청 절망했었다.
그러니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은 맞는다.
오늘 학림다방 방문은 전혀 예상에 없던 일이다.
그 문을 열면 그때의 나로 돌아가는듯 할것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망설였던 것이다.
첫사랑과 앉았던 그 자리에서
비슷한 카푸치노를 마시며
그때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던가 기억해보지만
아무것도 생각나는게 없다.
아마도 나는 계속 떠들었을것이고
그는 가끔 단답형 대답과 훈계를 했을거다.
동갑이지만 큰 산 같았던 나의 첫사랑.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대답을 하던
자연계였지만 인문학적 감성이 가득하던 나의 이상형.
나는 그를 좋아했던 것일수도
존경했던 것일수도 있다.
그 친구를 잠시 생각해본다.
참으로 오래 전 일이다. 아득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