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땜빵이 좋다.

언제든 불러달라. 땜빵의 쓰임새에 만족한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세상일은 요지경 속이다.

그렇게도 아르바이트라도 하고 싶었을 때는

그렇게도 일이 안 생기더니

이제 재취업에 성공하고 나니

아르바이트도 계속 생기고 일이 추가로 들어온다.

없을때는 하나도 없더니 내가 좋아라하는 일이 몰려들고 있다. 이러다가 쉬고싶어질수도 있겠다.

미리 약속하고 하겠다고 서류를 제출한 것이니 이제와서 안한다고 할 수는 없다.

선약은 지키는 것이라고 배웠다.

뒷통수 치기는 가장 나쁜 것이라고 배웠다.

배신의 아이콘이 되기는 싫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나에게 연락이 왔다는 것은

무언가 땜빵이 필요한 시기라는 점이다.

위기를 돌파하는데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데 거절하는 것은 아니다.


오후에는 시원한 지하 커뮤니티센터에서 두 시간

집중 작업으로 영재 판별 문항 출제를 마쳤다.

물론 옆에서 하이톤으로 수다를 떠는 아주머니 두 분이 계셨다만 나의 뛰어난 집중력으로 미션을 완수했다.

내일 아침 반짝거리는 정신으로 다시 한번 검토하고 파일을 송부하면 되겠다.

오늘은 아마 봐도 봐도 이상함을 못 찾을 확률이 크다.

시험 문항이라는게 그렇다.

출제한 사람 눈에는 뭐가 씌운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보고 보고 봐도 안보이던 것이 다음 날 맑은 정신으로 보거나 다른 사람 눈에는 보인다.


내일은 같은 학번인데 같은 학교에 근무했던 친구들과 점심 약속이 있다.

염색 선약이 있던 나 때문에 약속 장소를 홍대입구로 정해주었는데

아직 식당을 정하지 못했다. 이글을 쓰고 폭풍 검색을 해야겠다.

그리고 내일 조금 일찍 가서 사전답사와 예약도 마무리해두어야 겠다.

세 명의 우리는 공통점이 있다.

아직 자식들이 아무도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안한 것인지 못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만...

아픔과 어려움을 함께 공감하는 시간이 될 것 같다.


오늘 오후에 두 건의 아르바이트 섭외가 왔는데

한 가지는 그나마 가장 많이 했던 연구 용역 평가이고

(물론 주제는 지금까지 했던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다.)

다른 한 가지는 딱 한번 해본 수학여행지 사전 답사 인솔이다.

(그때는 처음이라 행사 담당자도 왔었고 다른 두명도 있었으나 이번에는 내가 혼자 오롯이 담당해야 한다.)

아르바이트가 일주일에 한 건도 없을때도 있었는데(엄청 심심하고 낙담했었다.)

이번 주는 3건에(아주 좋다는 이야기이다.)

다음 주부터는 월, 금 방과후 강의가 고정적으로 있고

3주차 부터는 월, 수, 금에 일이 있다.

7월 마지막 주는 화요일에는

초빙교수 나가야할 모대학교 교수 워크숍에

연구 TF 팀 중간보고일까지 있다.

이 정도면 매일 출근하는 셈이다.

따라서 아직 8월은 계획이 많이 없지만

7월이 아르바이트 횟수의 최고점을 찍을 예정이다.


쓰다보니 알바천국 자랑질이 되었다.

그래도 나는 <후배들이 권해서 할 수 없이 하려고 마음먹었다.> 라던가

<서울교육의 발전을 위해서 이 한 몸을 바친다.> 라던가

<내가 이 세계에서 제일 잘나간다.>라는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는다.

나는 땜빵이다.

원래 그 일을 하던 분들 중에 갑자기 육아를 해야한다던가 더 중요한 다른 일이 있다던가 하는 분들 대신

그 일의 유지와 마무리를 하는 업무에 만족한다.

이 나이에는 주인공을 하려면 안된다. 욕심이다.

있는 듯 없는 듯 뒤를 바쳐주는 멋진 땜빵이

내 아르바이트의 목표이다.


(오늘 오전 사진 전시회에서 눈에 들어온 검정색 소화기 사진을 이 글의 대문 사진으로 골랐다.

얼마전부터 감각있는 전시장에는 모두 검정색 소화기가 놓여있었다.

소화기는 항상 쓰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소화기가 꼭 필요할 때가 발생할 수도 있다.

소화기는 땜빵이 아니라 필수품이다.

나는 필수품이 되고 싶지만 땜빵의 역할에도 충분히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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