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불후의 명곡

선곡이 중요하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언제부터 노래를 불렀었는지 자세한 기억은 없다.

동요를 섭렵하고 부르고 다녔다는 이야기는 전해들었었다만

음감과 박자감은 타고났다.

그것은 다행스럽게도 99% 유전의 힘이다.

어떻게 보면 음치와 박치도 타고난 것인 듯 하고

그 분들의 어려움에 공감은 하지 못하지만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예전에 <너목보>라는 진짜 음치와 박치를 찾는 방송 프로그램도 있었고

(가끔 넋놓고 보면서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이었다.)

한때는 회식 후 2차가 무조건 노래방이었던 적이 있었고

아직도 음치 클리닉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

음악이 주는 기쁨과 즐거움을 체험으로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음악은 감상이 주는 기쁨과 즐거움만으로도 충분하다만.


학교 다닐 때 음악 시험은 무조건 가창 시험이었다.

학기말에 한번 보는 이론 시험이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배점은 가창 시험이 훨씬 컸다.

주로 우리나라 가곡 중심의 가창 시험이고

친구들이 모두 보는 가운데 노래를 부르니

누가 잘 부르고 못 부르는지는 금방 파악이 된다.

지금은 가창 시험은 아주 작은 비율로 진행된다.

그리고 공개적인 장소가 아닌 곳에서 치루어지기도 하고

심지어는 노래 부르는 것을 거부하는 학생들도 있다.

사실 노래를 잘 못하는 사람에게는 너무 가혹한 수행 평가 방법이기 때문이다.

여중, 여고를 나왔는데 매년 한번씩은 합창대회가 있어서

(체육대회와 합창대회가 소풍 다음으로 가장 기대되는 큰 행사였다.)

여학생 특유의 집념으로 한 달여쯤은 매일 매일 아침 저녁으로 연습을 하는 과정을 거쳤는데

그 때 박치와 음치였던 친구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제야 그 어려움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었다.

너무 많은 연습을 해서 합창대회 당일에 모두 목이 쉬어버려

실력 발휘를 못하는 학급들이 나오기 일쑤였고

성적이 발표되면 환호와 울음이 반반씩 터지곤 했었다.

노래 한 곡에 목숨을 거는 경연장이었던 셈이다.


노래 실력으로 순위를 겨루는 방송 프로그램 포맷은 여전히 계속되는 중이다.

그 중에 학교에서 실현 가능한 포맷은 <복면가왕> 이다.

학교 축제마다 <복면가왕> 포맷은 제일 관심 받는 형태이고 한번쯤은 다 해봤을 것이다.

퇴직 전 두 번째 학교에서 <복면가왕>을 한다고 했고

어찌 알았었는지 섭외를 받았는데 잠시 고민하기는 했다.

그 전까지는 전교사 합창을 했었으니 노래 실력을 약간은 들켰을 것이다.

노래 부르기는 어려서부터 참 좋아라했지만

갑상선암 수술과 나이가 들면서 성대의 힘이 뚝 떨어진 것을 스스로 느끼고 있었고

나의 선곡이 어린 학생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 것인가가 의문이었다.

왜 유명하지 않은 그 곡에 꽂혔었는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그 시기의 마음이 그랬었나보다.

<사랑은 유리같은 것> 이라는 나와는 안 어울리는 노래였고 그 당시 중학생인 여학생들에게는 너무도 생소한노래였다.

그리고는 오랫동안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서 연습을 했고

당일 박수는 많이 받았으나 1회전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아마도 선곡때문일것이다.

그런데 사실 1회전 탈락이 나쁘지 않았다.

2회전에 준비한 곡이 어려운 곡이었고(박자가 빠른 남자 가수 곡이 어렵더라.)

입고 있었던 공룡 옷도 생각보다 엄청 무겁고 더웠었다.


그리고는 오늘 문득 <불후의 명곡> 이라는 프로그램을 돌려보고 있다.

야구 선수 특집이라 내가 응원하는 선수들이 나오는 것이라 알고리즘이 데려다 준 것이다.

열심히 연습했을 그 과정이 짐작이 되고

야구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는 그들의 행운이 조금은 부럽기도 하고

그 노래들을 아무 생각없이 따라 부르면서

나도 다시 노래를 불러서 성대에 힘을 조금 키워야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되기도 하고

아픈 남편이 갑자기 아들 녀석과 함께 노래방에 한번 가자고 이야기했던 것이 생각나서 울컥하기도 한다.

생전 같이 노래방에 가본 적은 손꼽을 정도이고

항암으로 많이 마르고 힘든 지금

굳이 노래방을 가자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와 남편의 노래 선곡 취향은 비슷하지 않다만

다음 주 아들 녀석이 출장을 다녀오면 한번 의사를 타진해봐야겠다.

그런 날이 온다면 아마도 나만의 처음이자 마지막 <불후의 명곡>을 찍는다는 생각으로 임하겠다.

선곡이 중요하다만 최근 노래는 남편이 전혀 알지 못하고

나는 옛날 노래보다는 최근 노래를 선호하는 편이다.

(노래를 크게 따라부르니 고양이 설이가 발라당 누운채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본다.

요새 내가 새로운 안하던 짓거리를 많이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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