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것이란 없다.
오늘은 이른 아침부터 심사 아르바이트가 있는 날이다.
9시부터 심사이니 20분전에는 도착해야하고
(그래야 담당자가 안도감을 갖게 된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업무 담당자가 될 수도 있다.)
평가 자료를 한번 훑어볼 시간을 확보하게 된다.
마침 비가 와서 날이 서늘하다. 다행이다.
남편 아침으로 콩나물국과 달걀 삶은 것을 준비해두고
나는 바나나 한 개를 먹고 길을 나선다.
이런 바쁜 아침을 보내서 오전 글을 쓸 시간이 없었다.
어제 <불꽃야구>를 보느라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 것도 한몫했다만.
아침 출근길 지하철은 오랜만인데
여전히 힘들어 보이는 직장인들로 만원사례이다.
그 와중에 이곳 저곳에서 배꼽을 드러난 옷들이 내 눈에 들어온다.
어디로 시선을 두어야할지 모를 정도이다.
의도치 않게 다른 사람의 배꼽 부위를 엄청 많이 보게 되는 요즈음이다.
갑자기 내 배꼽이 생각나면서 그 부위가 간질간질해진다.
이것은 무슨 시그널이냐?
사촌동생이 63빌딩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갑자기 배꼽이 간지럽다고 한 이후로 처음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과제집착력이 많은 편이었다.
그 과제집착력이 어디에 꽂히는가가 그때 그때 달라질 뿐이었다.
어느 때는 코딱지에 몰입하여 마구마구 코를 파댔다.
가끔은 그래서 코피가 나기도 했고 딱지가 생기기도 했는데
엄마는 혀를 끌끌 차면서 이쁘게 낳아 줬더니
지가 코를 하도 파서 콧구멍이 커져서 벌렁거린다고 흉보셨었다.
가뜩이나 코에는 어렸을 적 수두로 얽힌 자국이 몇 개 남아있다.
한때는 그 자국에 만들어지는 피지를 짜내는 것이 일상이었던 날들도 있었다.
하얗게 피지가 톡하고 올라올때의 그 쾌감이 있었다.
그러니 얼굴과 피부가 좋아질 리가 없다.
또 한때는 귀지에 그렇게 전념했을 때도 있었다.
귀지를 파고 파고 하면 할수록 귀가 더 간지러워지는 반작용이 일어나기도 했고
귀가 부은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 그러면 무서워서 며칠 건드리지 않다가
다시 시간이 지나면 슬슬 귀지 제거의 즐거움이 생각나곤 했었다.
그래서 지금도 유튜브로 귀지나 피지 제거 영상을 감상하는지도 모르겠다.
배꼽 또한 어느 시기 나의 과제집착력의 표현 대상이었다.
어느 날인가부터 갑자기 배꼽 속의 먼지가 눈에 뜨이기 시작했다.
가끔은 털의 형태이기도 했고 아주 가끔은 몰캉거리기도 혹은 딱딱하기도 한 배꼽 속의 딱지들을 떼어내는 그 재미가 쏠쏠했는데
여기도 역시 너무 과하게 집착하게 되니
배꼽부위가 따갑고 붉어지고 간지럽기도 하면서 아파왔다.
그러다가 어느날 엄마에게 그 작업을 딱 들키게 되었고
벼락같은 잔소리 폭풍이 이어졌었다.
배꼽이 얼마나 중요한 부분인지 아냐고.
배꼽을 그리 건드리면 염증도 생기고 배도 아파온다고.
배꼽을 차갑게만 해도 배탈이 나게 되어 있다고.
그래서 잘 때도 꼭 배까지 이불을 덮고 자는 거라고.
과학적인 이론에 들어맞는 것인지는 그때는 도무지 알 수 없었는데
그 날의 그 잔소리를 들었던 상황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 뒤로 출산을 하면서 아들 녀석의 배꼽이
어떻게 자리를 잡고 만들어지는지의 과정을 보고
나니(무섭더라. 배꼽이 떨어질때까지 그 기간동안 잘못될까봐 엄청 걱정했었다. 그리로 균의 감염이 일어나는 사례도 종종 보았다.)
저절로 배꼽을 다시는 건드리면 안 되겠다는 의식이 굳건하게 자리 잡게 되었었다.
어느 부위이건 어느 정도의 부속물들은 자연스럽게 생기고 없어지는 것이며
그것들이 오히려 감염 등을 막아주는 자연스러운 방어선 역할을 한다는 것은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러니 코딱지도 귀지도 배꼽의 때도 하나도 없이 깨끗하게 매번 정리해야할 필요는 없다.
청소나 청결과는 다른 개념이다.
그래도 아직 찬 방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자는 방법은
배탈이 나거나 더운 여름에 쓰는 나만의 비법이기도 하다. 엄마는 못마땅해하셨지만.
임신 중에 이것을 못해서 얼마나 답답했었는지 모른다.
이렇게 배꼽이 중요한 신체 부위임을
(우리의 신체에서 사소한 것이란 없다.)
배꼽을 자랑스럽게 드러내고 다니는 요즘 처자들은
잘 알고 있으려나 모르겠다.
심지어 배꼽티와 그와 비슷한 옷을 멋지게 입으려고 배꼽 성형을 한다는 이야기도 있는 것을 보면
배꼽이 또 다른 자신의 매력을 과시하는 부분으로 자리 잡고 있긴하나보다.
지하철 에어컨 찬바람에 배꼽을 드러난 요즘 처자들을 보면
아마도 우리 엄마는 혀를 끌끌 차실 것이다.
그러나 어쩌겠나.
자신의 몸이고 자신의 매력 어필이고 한 때의 유행인 것을...
그런데 지하철에서 눈을 어느 곳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는 내 마음은 조금 심난하기는 하다.
다행히 배꼽이 간지러워지는 증상은 멈추었다만.
휴대폰에서 눈을 떼면 절대 안된다.
<불꽃야구> 다시 돌려보기에 집중하자.
오늘 사진은 가장 배꼽과 비슷한 모양의 꽃을 골랐다. 이쁘다. 내 배꼽이 저리 이쁘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