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해봤으니 그 마음을 안다.
어제 대학때의 몇 안되는 아르바이트를 되돌려보고 나니
나의 어설펐던 첫 번째 입사 도전기도 함께 이어져서 생각이 난다.
이런 것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이고
연상 작용이기도 하고 유튜브의 알고리즘과도 비슷한 뇌구조일 것이다.
그래서 추억팔이는 항상 길고도 길다.
친정엄마는 항상 매몰차게 이야기하셨었다.
<대학졸업하고는 하루도 공짜밥을 안 먹여줄 것이다.> 라고.
그 말의 부담감이 어마어마했다.
그 말을 하는 엄마의 표정도 단호하기가 그지없었다.
이해는 한다. 지금은. 벌이가 일정하지 않는 상황에 딸이 줄줄이 있었다.
그때는 많이 섭섭했었다.
대학원에 가고도 싶었고 유학도 두렵지만 하고 싶었다.
나의 대학 시절에는 여자가 할 수 있는 직업이라는 것이 너무도 한정적이었는데다가
나는 사범대학이었고(부모님의 강권이시기는 했다. 교사를 하라는.)
그 당시 여자들의 주된 취업자리인 비서는 나의 체질에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외모로 도저히 지원할 수 없는 영역이었고
어학은 지원할 수도 없는 영역이었고(영어 읽는 것만 가능하니 되겠냐)
교사가 되는 방법이 유일해보였었는데(그 때 내 시각에서는)
임용고시(당시는 순위고사)에서 나의 전공은 몇 년 동안 공립학교 교사를 뽑은 적이 없었다.
그 당시의 사립학교 교사는 신의 영역이라는 말이 돌았었다.
4학년이 되니 초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여름 방학 중 공고를 하나 보게 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정보 찾기를 좋아하는데
그때의 정보란 신문의 조그만 한 줄이 다였던 시대였다.
매의 눈으로 놓치지 않은 그 정보는 당시 참고서 업계의 양대 산맥이었던 곳 중 한 곳의
과학 참고서 제작진 자리였다.
지구과학 전공자는 많지 않으니 가능성이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난생 처음 이력서를 쓰고 자기 소개서를 쓰고 우편으로 발송하고 몇 날 몇 일을 기다렸었다.
그리고는 운 좋게 서류 심사에 통과하여 시험을 보러 오라는 기별이 왔었고
시험은 지구과학 내용들이라 그럭저럭 본 것 같았고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아싸. 이렇게 쉽게 직장을 얻게 되는가 생각하고(엄마에게 큰 소리 칠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사상 첫 번째 취업 면접을 하러 갔는데
면접이 끝나갈 때 쯤 한 명의 심시자가 질문을 한다.
<대학 졸업 예정자인신가요?> <네.>
그 이전의 좋았던 분위기가 일순간 싸해짐을 느꼈다.
아니 내가 분명히 자기소개서와 이력서에 마지막 학기 중이라고 써놓았는데 그걸 안 읽은 것인가?
내가 속인 것도 아닌데 내 잘못이었던 것인가?
당황하는 심사진의 모습이 보이고 침묵의 1분 정도가 지나더니
심사위원장으로 보이는 한 분이 <졸업하고 다시 지원해주세요.>라는 말을 남긴다.
이렇게 나의 용감무쌍했던 첫 번째 입사 시도가 막을 내렸다.
나의 생각이 짧았었다.
당시는 졸업 한 학기를 앞두고 취업이 되면 성적과 수업 등에 배려를 해주고 회사에 다닐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약간의 관례였었다.
나도 그것이 될 것이라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이었는데
그 회사는 그럴 마음이 조금도 없었던 것이었고
아무튼 나는 회사 내규 적용으로 탈락이 확정되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에게도 다행이었고(회사 체계보다는 수업하는 체질이 맞다.)
그 회사의 운영 방침이 옳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나는 기적처럼 거의 십년만에 다시 부활한 순위고사를 통해서 공립학교 교사가 되고
그리고 한참 뒤 그 회사에서 발행한 교과서 심사 위원이 되었으니 세상일은 참 재밌기도 하고 모르는 것이 맞다.
그래서 착하게 살아야하는 것도 맞다.
오늘 아침 다시 마음을 착하게 먹어본다.
몸이 힘들면 착하지 않게 되는 본성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마련이다.
이번 주 토요일 구직자들의 마지막 단계인 면접 심사위원 아르바이트 일정이 있다.
그 때의 경험을 살려 가급적 친절한 심사위원이 되도록 노려해보겠다.
심사위원 표정과 말에 일희일비하는게 지원자의 마음인것을 잘 안다.
얼마전까지 또 재취업을 위해 구직전선에 있지 않았는가?
그들의 절박함을 잘 알고 있다.
<역지사지>는 만고의 진리인 셈이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해 본 사람만이 가타부타 말을 얹을 자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