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전 아르바이트 이야기
다섯 번의 경험을 가지고 무언가에 대한 결과론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섣부른 일이다.
적어도 동일한 일을 스무 번을 해봐야 경력직이 되는 법.
왜 스무 번이냐고? 막연하게 경험에 의존한 나의 단순 노동에 익숙해지는 횟수이다.
스무 번을 하면 무엇이든 몸에 익어서 자동으로 반사가 되어 나오는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더라.
물론 스무 번을 연습해도 안되는 것은 안된다.
높이뛰기도 매트 뒷 구르기도 줄넘기도 그랬었다.
오늘 다섯 번의 경험으로 소독 아르바이트를 마무리한다.
8월부터는 체력을 보완하면서 2학기 새로운 강의 준비에 몰두하여야 한다.
그 사이에 수업 계획서도 업로드해야하고
(그것을 보고 학생들이 수강 신청을 하니 매력적으로 작성해야 한다.)
평가 기준도 결정해야 하고(평가 기준을 수업 전에 명확히 알려주는 일이 중요하다.)
수업에 필요한 교구도 찾아보고 신청해야 하고 할 일이 태산이다.
어제 워크숍에 다녀오고나니 마음이 바빠졌다.
이렇게 할 일이 많은 상태를 즐겼던 내가 이제는 일에 쫓기는 마음이 드는 것을 보니 늙긴 늙었나보다.
내가 그 사이에 했던 아르바이트는 무엇이 있었던가 회고해본다.
대학생이 되어서 아르바이트를 무지 무지
하고 싶었으나(사고 싶은게 많았다. 죠다쉬 청바지도 나이키 운동화도 사고싶었다.)
대학생의 과외 아르바이트는 전면 금지된 상황이었다.
저녁 늦게 하는 일은 초저녁잠이 많은 나로서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고
기숙사 사감처럼 8시 귀가를 못박아둔 부모님을 봐서도 안되는 일이었다.
카페 서빙일은 외모가 안되어서 불가능했다.
어느 카페 사장님이 나를 알바생으로 쓰겠냐.
내가 생각해도 안쓴다.
그때 당시 카페 알바생은 미모로 주위 대학생들을 끌어모으는 준 연예인급이었다.
떡볶기집 DJ 가 인기를 끌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래도 용돈 벌이는 하고 싶었던 나에게 딱 맞는 아르바이트를 찾았는데
그것은 라디오에 그럴듯한 사연을 보내서 상품을 받는 것이었다.
당시에 유명한 라디오 프로그램들이 몇몇 있었다.
주부 대상의 오전 프로그램도 있었고
학생 대상의 저녁과 밤 프로그램도 있었다.
나는 방송국을 가리지 않고 이곳저곳에 사연을 응모했고
선택율이 꽤 괜찮아서 사연 공개가 되면 밥솥도 냄비도 화장품도 찻잔 세트도 받곤 했다.
그때는 현금으로 주는 원고료는 없었던 시대였다.
그러다가 간이 조금 부어서 직접 라디오 프로그램에 1일 DJ를 하는데도 뽑혀나가기도 했고
(순전히 얼굴은 안보고 글만 보고 뽑히는 것이니 가능했다.)
내가 고른 음악으로만 그날의 방송이 진행되는 짜릿함을 맛보기도 했고
당대 내노라 하는 황인용, 차인태, 이문세, 송승환님들과 함께 방송을 하는 영광의 날을 보내기도 했었다.
라디오 프로그램 작가가 내 꿈이었던 짧은 시기였다.
아참 한번은 샘터에 글을 실었더니
전국의 국군장병님들께 편지가 엄청 왔었다.
우체부아저씨가 놀라실 정도였는데
답장은 하지 않았다만 읽기는 다 읽었다.
그리고는 YMCA에서 방학 때마다 운영하는 캠프 지도자를 했었다.
그 당시에 그곳을 오는 학생들은 최고 수준의 경제력을 가진 학생들이었는데(압구정동 출신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과 함께 2박 3일동안 수영복도 갈아입혀주고 머리도 따주고 머리도 말려주고 옷도 갈아입혀주고
캠프 행사마다 쫓아다녀주는 일을 도맡아하는 보조교사 였던 셈이다.
그렇게 2박 3일을 보내고 나면 헤어질 때 그들은 아쉬운 모습으로 빠이빠이를 해주었고
심지어 눈물을 흘리기도 했었고
부모님들께서는 고맙다고 해주셨었다.
내 생전 첫 교사 경험이었던 셈이다.
그 때 알았다. 교사는 머리만 쓰는 직업이 아니라는 것을...
학생들과 함께하려면 몸도 많이 쓰는 직업이라는 것을...
쉽지 않은 길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는데도 나는 왜 선택했던 것이냐. 운명이다.
그 이후로 몸을 쓰는 아르바이트는 소독 알바가 처음이자 아마도 끝일것이다.
몸을 쓰는 일이 얼마나 고되지만 신성한 일인지
그리고 빛나는 일은 아닐지 모르지만 누군가가 해야할 소중한 일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깨닫는 기회가 되었다.
소독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만난 배달 기사님들,
청소 여사님들, 관리사무소 직원님들,
아파트 동마다 계신 기사님들 모두의 노력이 없다면 하나의 커뮤니티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리고 오늘 야구르트와 우유와 생수 그리고 삶은 옥수수 반 개를 주신 따스한 주민 여러분들도 공동의 커뮤니티 구성원이다.
이렇게 몸을 쓰는 일을 해볼 기회를 제공해준 친구에게 감사하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오늘도 조금은 성장했고
그 내용이 타인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바탕이 될 것이고
내 강의의 어느 모퉁이에 조금은 반영될 것이라 믿는다.
오늘 하루도 잘 살았다. 잘 버텼다.
저녁은 물냉면이다. 남편이 카드를 주었다.
(이 글을 쓰고 한번은 더 하기로 했다.
나 때문에 스케쥴표를 바꾸게 되어 미안한 마음이다.
오늘 대문 사진은 소독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지쳐있던 순간 계단에서 올려다 본 창문 밖 하늘이다.
보는 것으로는 예술이다.
막상 밖으로 나가면 더워서 그렇지.
지열이 높으면 강한 상승기류가 생겨서 적운형 구름이 발생할 확률이 높다.
오늘은 한강뷰 아파트여서 눈호강을 하였던 것이 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