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서야 느끼게 된 것을 다행이라 생각해야하나?
기억하는 나의 삶 최초의 순간에서부터 지금까지 더위에 대한 기억은 그리 많지 않다.
대학교 1학년 첫 여행 오대산 산행한 날.
찬 물을 머리에 들이부었던 유일무이한 날 그 정도이다.
아마 내 몸의 세팅 자체가 더운 것을 그렇게 예민하게 느끼게 되어있지 않은 모양이다.
물 마시는 양도 많지 않고 땀의 양도 별로 없다. (몸에는 결코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추위는 사실 두려움과 무서움을 느낄 정도이다.
그러니 추운 나라로의 여행은 꿈도 꾸지 않는다.
오로라 보러 가기, 극 지방 여행하기 이런 것은 아예
내 머릿속에 있지도 않다.
언제부터였을까? 추위가 그렇게 무서워진 것은? 무서움을 알아야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 순서이다.
모르면 두려움도 없다.
이렇게 시작되는 브런치글을 썼었다.
지난 겨울이야기이다.
그런데 오늘은 제목을 바꾸어 더위에 대한 약간은 생소한 두려움을 나열하게 되었다.
6개월의 시간 만에 무엇이 나를 이렇게 급격하게 변화시킨 것일까?
견디기 힘들게 덥구나 더운 것도 많이 힘든 것이구나를 느낀 것은 작년 여름부터였다.
작년 여름에는 방학 하자마자 두 번째 코로나 19에 걸렸기 때문에
아파서 기운이 빠져서 잘 못먹어서 힘든가보다라고 넘겼던 것도 같다.
그래서 작년 마지막 여름방학의 기억은 코로나 19와 더위와 그리고 제주행 퇴직 전 연수의 기억밖에는 없다.
올해는 완연히 더위가 사람을 죽게도 만들겠구나 하는 위기감이 든다.
추워서 얼어 죽는 일만 생각했는데 더워도 어지럽고 숨도 못 쉬고 위험한 상태가 될 수 있겠구나가 충분히
와 닫는다.
지금까지는 추운 겨울에 따뜻한 나라로의 여행만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랬었는데
(교사 연수 중 나라를 선택할 수 있었던 적이 있었다. 겨울에 호주 혹은 핀란드였다. 나는 당연히 호주였다. 오로지 날씨 때문이었다.)
이제는 더운 여름에 서늘한 나라로의 여행도 고려해야 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서늘한 정도이지 아주 추운 것은 배제된다만...
중학교 3학년때 우리학교는 당시 소년체전 개회식의 매스게임에 단체 동원된 적이 있었다.
지금은 어느 곳에서도 하지 않지만(아니다. 북한에서는 하는 듯도 하다.)
단체로 어떤 스토리가 있는 군무나 카드섹션같은 것을 담은 매스게임이 큰 행사마다 있었다.
이 행사를 위해서 우리는 3월부터 오후 시간 모두 수업을 접고(단축 수업을 했었던 듯 하다.)
군무나 카드섹션을 만드신 수학 선생님과(열과 오를 세밀하게 계산해야 한다.)
체육 선생님의 지도하에 동작을 익히고 글자를 만들고 헤쳐모여를 하루에도 수십번씩 연습하였다.
처음에는 수업 대신 운동장에서 뛰어다니면서 노래도 듣고 몸도 움직이니 좋았을지도 모른다만
(3월에는 추웠었는데)
날이 더워지면서 하루 3시간 정도의 강행군 연습을 버티기 위해서는 체력이 관건이었다.
5월에 들어서면서 하루에 한 명씩은 픽픽 쓰러지는 일이 발생했고
보건 선생님이 더 바쁜 날들이 이어졌다.
옆 자리 친구가 얼굴이 하애지면서 뒤로 넘어가는 일은 처음에는 너무도 놀랍고 무서웠지만
거의 매일 일상이 되니 오늘은 누가 넘어졌는지
어제는 누구였는지 이야기하기 보다는
그 친구가 빠져서 내가 움직여야되는 동선이 어떻게 변하는지 헷갈리는지 여부가 더 중요한
그런 시기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6월말이 되었고 다행히 나는 한번도 쓰러지지 않고 그 날들을 보냈다.
그때는 뚱뚱하고 밥도 두 공기는 무난하게 먹는 소녀 장사 시기였다.
효창운동장인가에서 드디어 그 매스게임을 보여주는 D-Day 날이 되었고 우리는 엄청 긴장하며 순서를 기다렸다.
우리가 마지막 엔딩순서 였고
우리가 끝남과 동시에 수백개의 풍선과 비둘기가 날아오르게 되어 있었다.
그땐 그랬었다.
그 전날 리허설에서 수학 선생님이 버린 담배꽁초가 수소를 넣었던
(그 당시에는 수소의 위험성을 그리 알지 못했었다. 요즈음은 절대 풍선에 수소를 넣지 않는다. 헬륨 풍선이 대부분이다.)
풍선으로 튀어가서 연달아 터지는 사고가 있기도 했다만...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어서 액땜으로 넘어갔다.
그 큰 행사를 선보이는 날이니 걱정태산이셨을게다.
당일날 요상하게 생긴 옷(요즈음의 요가복과 비슷)을 입고 여러 도구들을 챙기고
나의 이동 동선을 확인하고 우리는 마치 큰 행사의 우리가 주인공인양 엄청 걱정을 해대면서
매스게임을 성공적으로 마쳤고(끝나고는 단체로 울음 바다가 되었었던 것 같다.)
다음 날 조간 신문 1면에는 우리들 사진으로 도배가 되었었다.
올해 더위가 사람을 이렇게 힘들게도 만드는구나를 실감하면서
그때 더위 아래서 연습하다가 쓰러져갔던 친구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아무 말도 없이 순식간에 넘어지던 그들이
연습하기 싫어서 쇼를 부린 것이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던 내가 얼마나 철이 없었던 것인지 반성했다.
나는 더위에 그나마 강해서 버틸 수 있었던 것이었고
그런 나도 이제는 더위에 손을 들고 항복할 수 밖에 없게 지구의 평균 온도는 매년 올라가고 있고
그 사이에 더위에 약한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반대로 겨울 추위는 이제 점점 버틸만해지더라.
내년부터는 피서 여행을 고려해봐야겠다.
지금까지의 나의 피서는 더위를 즐기러 가는 것이었다면
이제서야 나는 진정한 피서의 의미를 깨달은 셈이다.
아침 8시도 안되었는데 에어컨을 틀게 만드는 더위.
아직은 생소하지만 두렵고 참으로 징그럽다.
물론 에어컨 온도는 26도로 설정은 해놓았다.
아들 녀석이라면 22도로 해두었을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