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사람을 보는 아픔

유전이냐 환경이냐

by 태생적 오지라퍼

유전과 환경 요인 중 사람을 결정짓는 것은 어느 요인이 더 우월할까는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

그것과 연관된 사례와 연구도 많고 많다.

어제 점심을 먹으면서 나는 유전이 더 강력한 듯 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만

그것은 단순히 나의 가계에 존재하는 유전적인 질병과 그와 관련된 상황이 너무 강하게 인식되어서일지도 모른다.

외삼촌, 엄마, 아버지 그리고 고종 사촌 동생과

내 동생으로 이어지는 환자 계보만 보아도 그렇고

외갓집쪽으로는 오래 아프지 않고 행복한 마지막(?)을 보내신 분을 찾아볼 수 없다는 끔찍한 사실에 기인한다.

친갓집쪽도 별반 다르지는 않다.

오랫동안 고통에 시달리지 않고

가족에게 간병의 어려움을 주지 않고

마지막을 보낼 수 있다면 최고의 행복이라 생각하는 그런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어제 저녁 남편이 시킨 여러 가지의 배달 물품을 정리하다가

유전이 아니라 환경의 지배력도 무궁무진하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암이라는 안좋은 상황과 만나게 되니

내가 알고 있던 남편이 아닌듯한 그런 상황을

많이 만나게 되어

조금은 당황스럽고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어제 남편의 주문 배달 물품은 아욱다슬기탕, 장어탕, 수용성 비타민 그리고

아직은 작고 잘 익은 것 같지 않은 파란 사과이다.

술을 좋아하고 즐겨했지만(지금은 엄청 후회한다만 그래도 먹고 싶은 것을 고르라면 맥주를 꼽는다.)

그래서 안주로 탕 종류를 먹기는 했지만 그리 즐겨먹던 스타일이 아니다.

고기도 거의 안먹고 나물 종류의 간이 세지 않은 음식을 좋아라한다.

본태성 비건 스타일이다. 회와 초밥은 좋아한다.

시아버님께서 고기를 좋아라하지 않으셨고

그래서 크면서 고기 반찬을 거의 해주지 않으셨다한다.

친정집보다 재정적으로는 더 나았던 것 같은데 왜 그러셨을까?

균형적인 식사는 중요한 것인데 말이다.

그래서 지금도 아주 심한 단백질 부족이 나아지지가 않는다. 지금 조금 먹는다고 바뀔리가 없다.


그랬던 남편이 깔끔하지 않은 걸죽한 탕 종류들을 배달시키는 것은 순전히 힘을 내고 살을 찌우고 싶어서이다.

어제 저녁에는 밥의 양을 늘려달라한다. 아욱다슬기탕도 두 그릇 먹고 말이다.

살이 또 빠졌다면서...

먹는 양은 사실 천천이 먹어서 그렇지

나보다는 조금 더 먹지만(나도 큰 일이다.)

아픈 사람이 살을 찌운다는 일은 다이어트보다도 힘든 일이다.

나는 양을 갑작스럽게 늘리다가 가뜩이나 소화력 떨어지는 위가 더 부담을 갖게 될까봐 걱정인데 말이다.

그래서 소화불량이나 설사가 나면 더 큰 일이라 생각하는데 말이다.

남편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단순한 생각만 가능하다.

지금 상황이 그렇다.

오늘 아침에는 장어탕을 끓여두었다.


그리고는 주변 친구들의 말에 홀딱 귀가 열려서는

독소를 빼준다는 물을 먹고

항암 효과를 높인다는 각종 영양 보조제를 먹고

대체 치료 방법을 자꾸 찾아보며

신뢰성 높지 않은 다양한 유튜브를 섭렵한다.

누가 보면 신종 종교 심취자의 형태이다.

등산과 농구를 좋아하고 술과 담배를 즐겼던 그 모습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매사에 지나치게 긍정적이었던 그래서 현실적이지 않고 자기 것을 너무 못챙겼던 그런 남편이

이제는 자기가 최고 중심이고 자기만을 생각하는 사고와 행동을 보여준다.

놀랍고 놀랍지만 아픈 상황이니까 하고 이해해보려 노력중이지만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외삼촌, 엄마, 아버지 그리도 동생의 변화 과정을 보았다만 그래도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극한 상황에 몰리면 누구나 다 다른 사람이 된다고 한다. 아마 나도 다르지 않을것이다.

그래서 오래 아프지 않고 삶을 마무리하는 일이 가장 행복한 일일지도 모른다.

가족들에게 주변 지인들에게 자기 고유의 모습으로 기억될 수 있으니 말이다.

돈은 없지만(있는 돈도 다 날렸지만)

틀림없이 착하고 좋은 사람이었던 남편의 모습이 그대로 남기를 기도하는 아침이다.

비가 많이 오면 우울한 생각이 드는 것은

어떤 기작일까?

사람은 환경의 동물이 맞다.

어제 점심의 유전과 환경 우월성 논쟁은 다시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다.


( 이 글을 쓰고 마지막 소독 아르바이트를 다녀왔더니 십전대보탕과 발효홍삼이 가득 배송되어 와있다.

나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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