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준비가 주는 압박감을 즐긴다.
통잠을 못자기 시작한지는 꽤 오래되었다.
그래도 가끔씩 몸이 많이 힘든 날은 통잠을 자는 날도 있긴하나(주로 노동의 힘을 빌린 날이었다.)
대부분은 초저녁에 반짝 졸려서 자다가 2~3시간에 한번씩 깨서(화장실이 이유일때도 있고 아닐때도 있다.)
뒤척이다가 휴대폰도 보다가 다시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 패턴이 일상적이다.
남편이 집에 주구장창 있으면서부터는 새벽에 남편이 화장실을 가는 소리가 들려서 더 자주 깨곤 한다.
물론 마음쓸까봐 깬 표시는 안한다.
할 수 없다고 늙어서 그렇다고 체념하고 지낸 것이 꽤 오래전부터이다.
새벽녘에 일어나서 TV를 틀어놓으시던 친정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나도 그러하니 말이다.
차이점은 나는 유튜브를 본다는 것이고 볼륨을 최소로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통잠을 잘 때도 가끔 나는 잠속에서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한 경험이 있다.
자는 것인지 깨어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매우 효과적이기는 했다.)
논문을 쓰기도 하고
새로운 실험을 하기도 하고
시험 문항을 출제하기도 했었다.
물론 다음 날 아침 일찍 기억이 나면 메모를 해두기도 했고
까맣게 기억이 나지 않아 자꾸 자꾸 기억을 떠올려보는 안타까운 날도 있었다.
어젯 밤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늘 새벽이다.
오랜만에 나는 자면서 공부를 했다.
아마도 새 학교에서의 첫 학기와 새로운 교과목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금요일 오후 강의 하나가 어제 수강신청에서 개설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일지도 모른다.
첫 수업 시간에 강의 소개와 함께 필살기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일 수도 있다.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의 수업의 큰 차이점은
수강 강좌를 직접 선택하고 변경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고등학교까지의 교사와 학생은 운명적으로 만나는 것이지만
대학에서의 교수와 학생의 만남은 온전히 학생에게 선택권이 있다.
그래도 오늘 새벽 자면서 생각한 강의 내용은 꽤나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어서
나는 일어나자마자 그 자료를 찾았고 메모도 해놓았으니 되었다.
월요일 두 시 회의가 있는데 나는 참여 대상자일까 아닐까를 살짝 물어봤더니 오라고 한다. 괜히 물어봤나?
낄 곳에는 끼고 빠질 곳에는 빠져야 하는 나이인데
자꾸 끼는 것은 아닌가 싶은 마음이 있기는 한데
물어보고 답변을 받았는데 안가는 것은 그래서
이번에는 셔틀버스를 이용해서 가보는 시간을 마련해보고자 한다.
새 학교에 정붙이기를 시도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경험상 필요한 일이다.
정이 붙어야 수업의 질도 높아진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는 내 마지막 학교에 대한 애정이 더 높다.
오늘 잠시 들러서 오랜만에 플리마켓 물품 나누기를 해야겠다.
중 고등학교는 이번 주 개학이다.
여름방학이 짧다.
어머님들께서는 이미 많이 지치셨을테지만.
나도 그들의 2학기도 진심으로 응원한다.
교사는 강의 준비에 대한 압박감을
학생들은 수업 따라가기에 대한 어려움을 헤쳐나가면서
학교라는 곳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일상이 되고 추억이 되고 애증의 장소가 된다.
즐기는 사람이 최고이다.
열심히 하는 사람은 지치지만
즐기면서 하면 덜 지치고 피곤함이 덜하다.
우천 취소된 <불꽃야구> 경기를 보면서
그 장대빗속에서 떠나지 않고 춤추고 응원해주던 부싯돌즈의 즐기는 모습에 낭만 치사량을 느꼈다.
(어제 서울에 내리던 비는 그 낭만을 이야기하던
비의 수준이 아니었다만...)
나는 절대 비맞으면서 응원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자면서도 강의를 준비하는 신공으로
새 학생들에게 재미와 의미를 선사해보려 한다.
결심은 이렇게 창대하고도 창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