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도 아무에게나 해당되는 삶은 아니다.
평생 늦잠을 자본 기억이 별로 없다.
매일 매일 일찍 출근해야 하는 직업이었으니 그렇기도 하다만(교사는 출근이 몹시 빠르다. 8시반 출근이었으나 항상 30분 이상 먼저 도착했으니 일찍 일어나지 않을수가 없었다.)
방학때도 주말에도 해가 중천에 떠오를때까지
내쳐 잔 기억은 거의 없다.
아파서 정신을 못 차리는 경우 빼고는 말이다.
그 근간에는 나의 성실성이 아니라
아버지의 강한 훈육이 작용했었다.
어려서부터 우리는 늦잠을 자지 못했다.
아버지가 워낙 일찍 주무시고 일찍 일어나셔서
(딱 지금의 내 스타일이다.)
안 일어나냐고 호통을 치셨다.
방학이라 조금 늦게까지 자려하면 화단에 물 뿌리는 조리개를 가지고 오셔서 얼굴에 물을 뿌리기 시작하셨다.
물론 센 강도는 아니었지만 그리고 더운 여름이었지만
얼굴에 물이 와서 똑똑 떨어지는 그 불쾌한 느낌을 못느끼거나 버틸 재간은 없었다.
아버지의 지론은 아버지 출근할 때와 퇴근할 때 현관문에서 인사는 꼭 해야된다는 것이었다.
당시 주말 연속극을 너무 많이 보신 듯 했다.
여하튼 나는 내 일생에 늦잠을 늘어지게 자본 기억은 없다.
물론 낮잠을 늘어지게 잔 기억은 종종 있다. 꿀잠이었다.
물론 어설프게 자고 나면 두통이 따라오는 부작용이 있다만.
퇴직 후 가장 큰 고민 중 한 가지는 불면증에 대한 고민이었다.
퇴직 후 생활이 걱정되기 시작한 시점부터
내가 그리 좋아라하던 초저녁잠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평소에는 아들 녀석의 늦은 귀가때 빼고는 일찍 잠에 들었었는데)
어느 날은 너무 잠이 안와서 짐 정리와 집 청소를 시작했던 기억도 있다.
덕분에 플리마켓도 운영했다만.
그러면서 불면에 대한 고민의 폭이 깊어졌었는데
의외로 찾아낸 나의 해답은 간단했다.
노동을 하자였다.
몸을 힘들 정도로 움직인 날은 잠이 오더라는 빅데이터가 기반이 되었다.
노동을 할 수 없으면 운동이라도 하자는 생각이 깊이 뇌리에 박혀서
아르바이트가 거의 없었던 3월부터 산책을 하기 시작했다.
하루 만보걷기라는 구체적이고 정량적인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지만
가급적 잠이 올 정도의 움직임을 하려고 노력했다.
대략적으로 평균 하루 6,000보 이상은 걸었던 것 같다.
내 걸음 속도로 한 시간 정도 걸으면 6,000보는 채울 수 있었다.
노동과 운동은 분명 다른 개념이기는 하나
몸이 느끼는 것은 아마 비슷한 것일게다.
뇌가 노동인지 운동인지를 구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마 뇌과학자들은 구별한다 할 것이다.
자발성과 비자발성의 차이나 느끼는 감정선에는
분명 차이가 있을테니 말이다.
그러므로 잠을 못 이루는 많은 분들이시여.
노동과 운동으로 해결하는 것이 가장 우선적이고 보편적인 방법일 겁니다.
그것으로 해결되지 않는 경우 전문가와의 상담과 처방이 필요합니다.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가 맞습니다.
유튜브의 많은 건강관련 내용을 다 믿으시면 안됩니다.
모든 정보에는 신뢰성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고
신뢰성은 전문가인지를 판단하는 가장 좋은 근거입니다.
물론 전문가 중에서도 나쁜 유형이 있다는 것이 함정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 왜 나쁜 사람들이 그리 많은 것인지요?
아마도 성악설이 맞을런지도 모릅니다만
그래도 오늘도 부지런히 악해지지 않으려 나빠지지 않으려 노력해봅니다.
그러니 늦잠은 필요 없지만(이제 개강이라 구조적으로도 힘들지만)
제발 어렵지 않게 잠드는 것만은 허락해주시기 바랍니다.
(어제 저녁 남편과의 밤 산책에서 커다란 연꽃들을 많이 보았다.
사진이 그 아름다움을 모두 담지는 못한다.
남편은 처음 본다면서 눈이 동그래졌다.
처음 보고 처음 하는 많은 것들이 그에게 남아있기를 기도한다.
어제 산책 후 남편은 발이 까지고 빠진 엄지발톱자리에 진물이 보인다.
저런 발의 상태인데 맨발걷기를 해보겠다 한다.
감염등의 이유로 반대의사는 이미 여러번 이야기했다.
마음이 아프다만 딱히 해줄 수 있는게 없다.
오늘 아침은 다음 주 영재학부모 대상 특강 자료 준비로 브런치글이 늦어졌다.
결코 늦잠을 잔 것이 아니다.
아침 일찍 글을 기다리신 분들이 계셨다면
고맙고 죄송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