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과 고민의 끝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다음 기회를 기약하기 힘든 것을 선택했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사실 글을 쓰고 나면 갈등과 고민이 명료해지고

문제점과 해결 방안이 구체화되는 경우를 자주 보았었다.

오늘도 그러했다.

별 일은 아니지만 선택의 기로에 있었는데

아침 브런치 글을 쓰고 나니

다음번에 갈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은 쪽을 제외하자는

간단 명료한 선택의 기준이 머리에 떠오른 것이다.

어찌보면 그것이 오늘 선택에 가장 중요한 키포인트였을지 모른다.


창동역으로 출동한다.

남편이 점심 약속길에 나설 때 나도 함께 지하철역까지 걸어갔다.

꼭 그 시간에 나가야 하는 것은 아닌데 남편 보호자겸 그때 따라나선 것을 알까 모르겠다.

자꾸 비틀비틀 걷는데도 옆에서 잡아주거나 하는 것은 질색팔색을 하니

조금 뒤에서 비상시에 대비하면서 걸어간다.

평평한 길을 놔두고 자꾸 경사진 길로 가려하고

땅을 안보고 허공을 보고 걷는다.

한참 전 엄마가 걷는 스타일과 점점 비슷해져간다.

항암약이 독해서일수도 있고 근력이 빠져서일수도 있다만 가급적 내색하지 않으려 애써본다.

지하철역에서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탑승하는데

잘 다녀오라했다.

잘 다녀오는 것보다 더 다행인 일은 없다.


창동역은 북부교육지원청 출장으로 다녀온 적이 있었고

그 인근 소독 아르바이트를 위한 방문도 있었고

시립과학관을 학생들 인솔하여 다녀온 적도 있었는데

새롭고 멋진 디자인의 건물들이 제법 생겨나고 있었다.

지나가는 아주머니가 <홍콩인줄 알았어.> 라고 이야기하는 소리가 영판 이상한 소리만은 아니었다.

그 중에 오늘 방문지는 서울시립사진미술관과 로봇인공지능과학관이다.

바로 옆에 나란히 붙어있어서 창동역 한번 방문에 두 곳을 모두 관람하고 돌아오는 일정이 충분히 가능하다.

점심은 새로 오픈한 건물 상가에서 아마도 올해 내 첫 번째로 기억되는 점심 초밥 정식이다.

초밥 6피스와 작은 사이즈의 우동인데 맛도 괜찮았고 가격은 10,000원이고 새로 오픈한 곳이어서 그런지 사장님은 친절하기 그지 없었다.

내가 배불러서 남긴 연어초밥 두 개를 너무도 아쉬워하셨었다.

맛이 없어서 남긴 것이 아니라고 여러번 이야기를 드리고 나왔다.


사진미술관은 생각보다 전시물의 종류가 많지는 않았으나

건물 및 안내문과 소품까지 세심함이 돋보였고

이제 막 소문이 나고 있는지 도슨트 해설 전시에는 사람들이 꽤 모여있었고

사진인지 미술 작품인지 구별이 쉽지 않은 것들과

(미술 전시회에 가면 사진인가 싶고 사진 전시회에 가면 그린것인가 싶다. 내 눈이 이상한 것인가?)

AI를 활용한 사진 확대 및 정교화 전시가 새로웠다.(이제 AI가 포함되지 않는 영역은 없어보인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내 눈을 가장 오래 끈 것은

흑백사진에 대한 여전하고 아련하고 막연한

호감때문 이기도 한 사진 두 점이었다.

하나는 나도 언젠가 지금은 아파서 누워만 있는 동생과 찍었음직한 어깨동무 사진이고

하나는 지금도 기억에 선명한 엄마가 분홍색 양산을 펴고 학교 운동회에 올때의 사진이다.

그때 그 순간과 비슷한 느낌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그 시대 엄마들은 양산을 쓰고 다녀었는데

한참동안 양산을 쓰는 사람은 별로 보지 못하다가

작년과 올해 엄청 더우니 양산 쓰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서 그 옛날이 되돌려졌었다.

엄마의 그 양산은 아버지가 일본에서 사가지고 오신 것이었다.

연한 분홍색에 하단에 리본처럼 무늬가 있던 보기에도 고급임이 틀립없는 우리 엄마에게 딱 어울리는 양산이었다.

사진은 아마도 이렇게 뇌리에 찍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양산은 어디갔을까? 지금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디자인일 듯 한데...


옆 건물인 로봇인공지능과학관은 유아와 초등학생 타켓의 시의 적절한 전시관 포맷이다.

온통 로봇 영화에서 봤음직한 그림과 구성이다.

특별 프로그램은 서울시 홈페이지에서 미리 예약한 사람에게만 제공된다.

그리고 유아들만 입장되지 않는다.

옆에서 하품하면서 같이 교육을 받고 있는 할머니들이 보였다.

나도 그 자리에서 하품하면서 영특한 손자 녀석과 시간을 보내고 싶긴하다만

오늘은 나홀로 강의 활용 및 연구팀 자료 답사 수집자로서의 역할만 충실히 수행한다.

집으로 오늘 길에 고양이 츄르와 내 스킨만 사려했으나

영험하신 지름신과 견물생심이 발동하여

오이, 버섯, 카레, 두부, 미니호떡 등을 사다보니 집까지 간신히 들고왔다.

오이 다섯 개가 주범이다. 엄청 무겁다.

오늘 오후 의도치않게 상체 근력 훈련으로 무게를 엄청 친것과 같은 효과를 보았다.

온 몸이 뻐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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