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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과학 교사의 수업 이야기 160

강의 첫 주를 마치고

by 태생적 오지라퍼

제일 힘든 주가 틀림없는 새 학기 첫 주 강의가 모두 끝났다.

아쉬운 점은 있지만 큰 사고 없이 마무리했다는 것만으로도 기쁘다.

이번 주 강의를 반영하여 다음 주부터는 가열차게 달리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뒤돌아보는 일이 꼭 필요하다.

위와 같은 이유로 교사일때도 매해 수업 공개를 했었다.

나를 뒤돌아보고 수업 준비에 대한 열의를 되찾기 위해서 말이다.


<인물로 보는 과학의 역사> 는 3시간 연강이기도 하고 교과 제목이 주는 바처럼 과학자도 알아봐야하고

그 과학자 업적의 시대적 의미도 알아봐야 하고

그 시대의 변화도 알아봐야하니 내용이 많다.

따라서 전체 강의 시간 중 내 강의 시간의 비중이 높을 수 밖에 없다.

그래도 나는 가급적 과학하는 방법과

과학적 사고력을 높이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기 때문에

고심 끝에 하루에 하나씩의 메인 활동을 넣어주기로 했다.

두 강좌 모두를 듣는 학생이 딱 두 명이니

가능한 활동이다.

더 많았으면 고민이 필요했을뻔 했다.

이번 주 메인 활동은 미스테리 박스의 비밀을 푸는 것이다.

일정한 패턴이 주는 의미를 찾아보고 나머지 빈칸을 완성하는 것인데

내가 10여년 전 시애틀로 우수과학교사 연수를 갔을 때

첫날 했던 프로그램을 우리나라 실정에 맞추어 변형한 것이다.

영재 학생 대상의 수업으로도

일반 학교에서도 여러 번 해봤는데(물론 대상자는 다르다만)

과학적인 사고와 관찰의 중요성을 느끼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었다.

첫 시간용으로 적합하다.

<과학적 사고와 상상력> 강의는 이 내용에다가

과자 관찰을 더 추가했고

조 구성을 위하여 도둑 부캐 찾기 퀘스트도 함께 진행했다.

퀘스트를 하면서 기후위기와 관련된 시사점도 자연스럽게 느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학생들은 대부분 잘 쫓아와 주었으나 늘상 그랬던 것처럼

가끔씩 졸거나 핸드폰을 보거나 하는 학생들도 소수는 있었다.

그럴 때이다.

밤을 새고 무언가를 하기도 하고

아르바이트에 지쳐있을 수도 있다.

내가 더 멋지고 흡입력 있는 수업을 해야만 그들을 깨울 수 있다.

이제

이번 주 수업에 사전 예고 없이 결석한 친구들에게 문자도 발송해야하고

열심히 참여해준 수업 MVP도 뽑아야하고

그들에게 줄 소정의 선물도 사야하고

다음 주 과자를 활용한 기준과 순위 결정을 위해서

쿠키류를 하나 더 구입해야할 것 같고

패들릿 업로드 자료도 다운받아야하고

일요일에는 2주차 수업도 정교화하고 확정해야 한다.

물론 월요일 수업을 하고는 수정이 필요하겠지만...

아무튼 첫 주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천원의 조식은 내가 좋아라하는 눌은밥이 있어서 행복했고

너무 양이 많아서 식빵을 구워먹는 것까지는 못했으나 재방문 의사가 분명하고

점심으로 가져간 고구마 반개가 너무도 배가 불러서 시리얼까지는 먹지 못했고(엄청 뻑뻑했다. 고구마맛이라는 뜻을 절감했다.)

금요일 수업이라서인지 결석생이 가장 많아서

다소 걱정이 되긴 한다만 이제 잠시 잊어버리고 쉬겠다.

참, 수업이 다 끝나고 여자 화장실에서

마지막에서 두 번째 학교에서 수업을 한 제자 녀석을 만났다.

지나치다가 서로 한눈에 딱 알아봤다.

게임 전공이라 한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던 녀석이었다.

지금은 게임에 들어가는 그림 그리는 것을 주 전공으로 한다했다.

반갑기가 그지없었는데 내가 하는 강의는 직전 학기에 들었다고 한다.

착하게 살아야지 이렇게 다시 만도 반갑게 된다.

그 녀석과 이야기를 나눈 후에서야

레이저 포인터 USB를 강의실에 두고 온 것을 깨달았다.

제자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생각도 못하고 그냥

갈 뻔했다. 다행이다.


금요일 오후 서울 인접 지역부터 예상처럼 차량 정체가 시작되고

다른 날보다 30여분 운전 시간은 더 걸렸지만

그러려니 이 정도도 정말 다행이려니

그렇게 생각했더니 마음이 편하다.

그나저나 내일 무언가 아르바이트 심사가 있는 날인데 장소 안내가 오지 않는다.

괜찮다. 언젠가 오겠지. 비 예보가 있어서 장소를 변경할 수도 있다.

행사는 내일 점심이고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날테니.

강의하다가 문득 학위 과정을 막 마치고 나서 수행했던 모종의 연구가 생각났다.

북한의 영재교육 수준 분석이었는데 국가 기관에서 수행하는 비밀 연구였었다.

이제는 말해도 되겠지만 말이다.

벌써 20년 전 이야기이다.

오늘의 대문 사진은 내 강의를 듣는 학생들의

남녀 비율을 대략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내 석사학위 논문이 과학교육에 있어서의 성차였는데

이 강의들은 여학생들이 더 신청을 많이 해주었으니

젠더 이슈는 이제 과학교육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싶다. 이것도 다행이다.

주말이 이리 반가울 수가 없다.

3월부터 8월까지 휴직 기간 중에는 전혀 느껴보지 못한 반가움이다.

나 다시 취업한 것 맞나보다.

직장인의 삶으로 일주일만에 완벽하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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