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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 기억

똑같은 날이지만 똑같을 수는 없는 날이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1985년 5월 15일 첫 스승의 날 기억은 사실 또렷하지 않다.

학교가 너무 추워서 그날까지 얇은 내복을 입고 갔었는데

날이 꽤 더워서 이제 내복을 그만 입어야지라는 생각을 했었던 기억이 나고

그 해 이후로 내 의복 생활의 지침이 되었었다.

무엇보다도 내 교직생활 첫 1학기는 비담임이었기 때문에(2학기부터는 담임의 길로 들어선다.)

더더욱 스승의 날 기억이 선명하지 않을 수 있다.

그 당시만 해도 담임 선생님의 영향이 어마무시했을때이다.

지금도 무엇보다도 담임 선생님이 제일 힘들고 중요하지만 말이다.

학교의 많고 많은 업무 중 가장 무거운 것은 담임 업무이다. 누가 뭐래도 그렇다.


스승의 날이라고 해서 수업을 하지 않고 노는 날이 아니다.

스승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더 열심히 수업을 함께 하는 날이다.

예전에는 스승의 날이라고 꽃이나 간단한 선물을 주었던 것도 사실이다만

누가 어떤 선물을 주었고 그러니 그 녀석을 이쁘게 봐주고

선물 안준 녀석에게는 불이익을 주고 그런 생각을 하는 선생님은 없다고 본다.

(이상한 사람들은 어느 직업군이나 소수가 존재하고

그 사람들때문에 전체가 매도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지금은 물론 학생회에서 다같이 주는 카네이션이나 장미꽃 한 송이가 전부인 시대이라 더더욱 선명하고 좋다.

몇 번 이야기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선물은 손편지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러하다.

손편지를 대신할 카톡 안부도 기쁘기만 하다.

갑작스럽기는 하지만 특별한 날을 맞이하여

안부를 전하는게 쑥스럽기는 할것이지만

이 날이라도 연락을 주는 녀석들에게는 안도감과 고마움이 들곤 한다.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던 녀석들의 안부라면 더더욱 고맙다.

한편으로는 지나간 선생님께는 고마움을 전하지 않더라도

현재 선생님들께나 고마움을 적극 표현해주기를 바란다.

표현하지 않으면 그 마음을 짐작하여 백퍼 알기는 힘드니 표현도 연습을 해야하는 역량임에 틀림없다.

(이렇게 쓰는 나도 사실은 표현에 서툴다만.)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 라는 말을 지금 현재 버전으로 바꾸면

<톡 한줄로 고마움과 기분 좋음을 나누어준다.> 가 될 듯 하다.


스승의 날 모든 교실 칠판에는 학생들의 아이디어 반짝이는 그림이 그려진다.

선생님의 캐리커쳐가 그려지기도 하고

자신들의 각오와 희망이 담긴 문구가 적혀져있기도 하다.

당연했던 그 그림이 그리워진다.(사진이라도 찍어놓을 걸 그랬다.)

아침 출근길에는 학생회 멤버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카네이션을 준다.

(나는 출근 시간이 너무 빨라서 항상 못받았다.)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학생회가 주최가 되어

간단한 기념식을 하기도 하고 재롱 잔치 수준의 공연을 하기도 한다.(이날 깜짝 스타가 탄생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날만큼은 큰 사고치는 일 없이 민원전화도 울리지 않고 학교가 대체로 조용하게 마무리된다.

이것이 1부이다. 2부가 있다.

일부 고등학교는 이날을 졸업한 학교 방문의 날로 활용한다.

스승 찾아뵙고 인사하기가 목적이지만 학교 홍보의 목적도 조금은 포함된다.

북적 북적한 졸업생들의 인사가 퇴근 전까지 이어지는 스승의 날이다.

학교는 시끌벅적한 것이 정상 상태일지도 모른다.

2부로 끝날지 아니면

졸업생들과 떡볶기 파티까지 갈지는 알 수없다.

그러면서 졸업생들끼리도 오랫만에 만나 수다른 떠는 날이다.


이제 더 이상은 교사가 아니라

(전) 교사가 되어버린 올해.

스승의 날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가슴 뻐근하다.

오늘, 내일 나를 기억하고 톡을 보내주는 기특한 제자들에게 미리 고마움을 전한다.

그 많은 선생님들 중에서 나를 기억해주었다는 것으로 충분하다.

퇴직을 앞두고 올해 몫까지 엄청난 선물을 받았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아무 연락도 없을지 모르는데 미리

괜찮다고 서운해하지말자고 마음의 준비를 해보는 아침이다.

여하튼 스승의 날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음이 요상해지는 그런 날이다.

지나간 제자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니 말이다.

특히 사고치고 말썽부리고 나를 힘들게 했던 녀석들이 더 많이 생각난다.

그 내용을 이곳에 구체적으로 글로 쓸 수는 없지만 말이다.

(개인정보유출이다. 누구인지 특정하지는 않겠지만 아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나의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의 말씀에 백번 동의하는 아침이다.

<내가 잘해준 것말고 못해줬던 것만 생각나는 퇴직 1년이다.> 라는 말씀이셨다.

오랫만에 톡을 드려봐야겠다.

그래도 가끔 내 정신 건강을 위하여 잘했던 것을 브런치에 적어보기도 한다.

자랑질인듯 하여 머쓱하기는 하다만 이해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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