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구해주신 분. 감사합니다.
자주 아픈 편이었다.
물론 지금 항암 중인 남편에 비하면 소소하게 아픈 것일지도 모른다만.
자주 이곳 저곳 소소하게 아픈 편이었던 나와
거의 아픈 것을 모르고 살아왔던 남편과
지금은 처지가 뒤바뀌어 있으니 세상 참 아이러니하달까.
소소하게 자주 아팠던 나도 생사를 가를뻔한(순전히 내 기준이다만) 고비는 몇 번 있었다.
오늘 아침은 느닷없이 그 생각이 난다.
아니다.
느닷없는 것은 아니고 어제 출장길에 목줄이 풀러진 강아지를 봤던 것에서 기인할 것이다.
요즈음 보기 드문 일이다.
초등학교 저학년때이다.
초등학교라 써야할지 국민학교라 써야할지 매번 고민이 잠시 되기는 한다.
국민학교라 쓰는 순간 나의 나이가 적나라하게 오픈될 것이지만
이제 나이쯤은 두렵지 않은 시기이고
초등학교라고 쓰는 것이 오히려 투명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싶은 마음이 조금 들어서이다.
이름이 변경된 것이 1995년이라한다. 지금 찾아보니...
독자의 이해를 고려한다면 초등학교가 맞을 듯 하다만 명칭이 무엇이 중요하나 싶다.
지금 이 에피소드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여하튼 어렸을 때 놀이터와 골목에서 노는 것이 일상이었던 그 시절에
어느 날처럼 집에서 10분쯤 떨어진 놀이터에서 놀고 저녁을 먹으러 집으로 올때였다.
뒤편으로 노을이 지는 것을 분명 보았고
밥때에 늦어서 엄마에게 잔소리를 듣겠다 싶었다.
골목길 위편의 내 소꿉친구 소현이 집 앞에서 빠이빠이를 힘껏 외치고는 집으로 털레털레 걸어오고 있는데
그 익숙한 골목길 한 편으로 꽤 사이즈가 커보이는 못보던 개가 맹렬하게 내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때는 집집마다 문앞에 개가 있었던 시기였고
목줄을 안하고 키우던 시기였고
광견병에 걸린 개가 많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던 시기였다.
작은 강아지도 아니고 꽤 몸집이 있는 큰 개가 내리막길을 타고 엄청난 속도로 뛰어오는 것을 본 순간
나는 머리끝이 쭈뼛 선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절감했다.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는데
집이 그리 멀지 않았으므로 도망가야된다는 생각만 들었다.
죽기 살기로 뛰면 내가 저 개보다 먼저 집에 도착할 것만 같았다.
차라리 가만히 죽은 듯이 서있었어야 했나를 생각한 것은 한참 뒤에서야 났다.
그리고 나름 빨랐던 내 달리기 실력을 너무 과신했었다.
아니다. 그 개의 빠르기를 예상치 못했었다.
그 골목에는 평소와 다르게 나와 그 개만 있었을 뿐. 그리고 평소와는 다른 심각한 정적이 흐를 뿐.
도움을 청할 어른도 없었고
너무 놀라고 무서우니 <엄마> 소리도 입밖으로 나오지 않았었다.
평소에는 그리 쩌렁 쩌렁 엄마를 불러댔었는데 말이다.
점점 그 개와 내 사이 간격이 좁혀지고 나는 꼼짝없이 저 개에게 물리겠다 싶은 그 결정적인 순간에
누구인지 지금도 기억나지 않은
키다리 아저씨가(평소에 한번도 본 적 없는 분이셨다.)
나를 번쩍 들어 올리셨고
그때 가지고 계셨던 막대기나 쇠지팡이 같은 것으로
그 큰 개를 단번에 제압해서 쫓아내셨다.
나는 아마 오줌을 약간 지렸던 것도 같고 눈물범벅이 되었던 것도 같고
어찌저찌 집에 와서는 엄마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대성통곡을 했던 것도 같다.
아마도 확실할 것이다.
그 생명의 은인 아저씨는 그 뒤로 한번도 골목길에서 다시 만난 적이 없다.
따라서 감사의 인사도 제대로 못드렸었다.
지금이라도 감사함을 전한다.
두 번째는 지난번에도 한번 글을 썼던
초등학교 1학년때 소풍갔다가
하수구 맨홀 뚜껑을 열어놓은 곳에 퐁당 빠졌던 일이다.
아래를 안 보고 친구들과 수다 떨고 걷다가 공사를 위해 맨홀 뚜껌을 열어놓은 곳에
(지금 같으면 있을 수 없다. 공사중 간판에 모두 다 접근 금지 가드를 쳐놓았을 것이다.)
퐁당 빼졌었는데 엄청 깊은 지하였고
(그 나이여서 키가 작았어서 그렇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다행히 찰과상 조금 빼놓고 다친 곳은 없었는데
그 깜깜한 지하에서 몇분간 죽음의 공포를 맛보았었다.
당시 남자 담임 선생님이 어떤 방법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여하튼 나를 꺼내주셨었다.
그때도 조금 울었던것 같다.
이 자리를 빌어서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한 반 학생이 60명이 넘던 시절이었다.
잊어버리고 그냥 가셨더라면 꼼짝없이 나는 죽었을 것이다.
위 두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른 고비는 생각나지 않는 것을 보니(물론 차량 접촉 사고는 몇 번 있었다만)
사고가 아니고 병으로 아팠던 적이었음에 틀림없다.
아픈 것으로 죽을뻔한 일은 쉽지 않다는 것은 이제 안다.
대부분 사고로 인해 죽을뻔 한다.
아파서 죽는 일은 매우 힘들고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만큼 우리나라 의학 실력이 뛰어나다는 소리도 된다만 환자의 고통이 너무 심하다는 이야기도 된다.
따라서 지금 내 나이쯤 되는 사람들의 제일 큰 행복은 자다가 순식간에 큰 고통없이 죽는 일이라는 말이
아마도 맞을 것이다.
나는 존엄사에 동의한다.
주말 아침. 오랜만에 나름의 호텔식 조식을(버섯 스프, 달걀 스크램블, 빵 구워서 버터, 치즈, 딸기잼 발라 먹고 사과와 파인애플 디저트이다.) 먹으며 나는 왜 이런 생각이 든 것일까?
생각의 움직임이 생뚱맞기만 하다.
나는 좋게 말하면 창의적이지만
반대로 말하면 엉뚱하기만 하다. 이 나이에도.
이 글을 쓰고 조금 먼 편의점을 다녀오다가
또 목줄을 하지않고 돌아다니는 강아지를 보았다.
물론 작고 귀여운 강아지였고
주변에 배변 비닐을 들고있는 주인이 있었다만
순간 멈칫하는 트라우마 작렬의 순간이다.
엘리베이터에 목줄 안한 귀여운 강아지가 갑자기 뛰어들어 깜짝 놀랜 적도 있다.
주인은 평온하게 이야기할 것이다.
<우리 강아지는 안 물어요. 좋아서 그러는 거예요.>
그런데 물지않는 강아지는 없다.
이빨을 몽땅 빼놓지 않고서야.
강아지는 좋아서이나 나같은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는 무서울뿐이다.
고양이도 마찬가지이다.
좋아하는거라고 느끼는 그 순간 할큄을 당한다.
(오늘의 대문 사진도 지인의 응봉산 야간 산행 중 촬영한 사진인데 잘 보면 위쪽의 달이 보인다.
20여장의 사진 중에서 이 사진을 선택한 이유이다.
내일 새벽 우리나라에서 날이 흐리지 않다면 개기월식을 볼 수 있다 한다.
나는 아쉽게도 그 시간에 깨어있다가는 월요일 강의를 할 수 없는 컨디션이 될 것이다만.
누군가 멋진 분들이 분명 사진과 영상을 SNS 에 올려줄 것이라 믿는다.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홍보했으나 진짜 촬영본을 가지고 오는 학생이 있다만
큰 선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어본다.
그것이 진정한 과학하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