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움과 무서움의 그 어딘가.
어제 새 로봇 청소기가 배송되어 왔고
일단 기사님과 함께 청소기를 대강 작동시키면서 맵핑을 했고
(그래도 완벽하지는 않아서 로봇 청소기가 침대밑으로 돌진했는데 사이즈가 커서 끼였고 침대를 움직여 간신히 구출했었다. 청소하지 않는 구간으로 설정하려 했더니 충전기 단자에 가깝다고 설정이 되지 않는다. 그곳에 충전기를 놓지 않는데도 전기 코드가 있으면 안 되는 것인지는 추후 살펴봐야겠다.)
기사님이 간 후 정식으로 한번 청소를 시켜봤고
소음 발생이나 청소 상태를 총체적으로 한번 점검했으나 반의 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고양이 화장실 근처 울퉁불퉁한 매트를 잘 올라가지 못하고 바퀴가 헛돌아서(이전 것도 그랬었다.)
그 부분을 정리해주려다보니 내가해야 할 청소 뒷정리가 점점 늘어났는데
함께 구입한 거치용 청소기는 10월이나 되어야 배송된다하니
다 내손 내 청소 작업량이 되어버렸다.
할 수 없이 본의 아니게 청소에 전념한 하루가 되었는데
갑자기 지금 집이 팔리서고 처음으로 전세 희망자가 집을 보러 온다 한다.
지난번 신용산에서 거의 100번 정도 집을 보여주고 이사를 온 경험이 있는 관계로
<집을 보여준다고 다 계약이 되는 것은 아니다,> 라는 생각이 있었고
따라서 학교 근처 용인 아파트를 한번 구경은 갔었지만
이 집의 계약 날자를 보고 결정하자 미루어 두었었다.
그런데 40대 초반의 부부가 집을 보면서 곧장 호의를 마구마구 나타낸다.
청소를 했던 날이니 깨끗해보이기는 했었을 것이고
집에 가구들이 많이 없으니 넓어보이기도 했었을 것이다만
집을 보러 온 사람도 이 집의 조금은 다른 구조에 호감이 생긴 것임에 틀림없다.
나도 그랬었으니 말이다.
이 집은 거실이 특이하다. 길쪽하다.
따라서 식탁을 어느 곳에 두는가에 따라 인테리어를 독특하게 구성할 수 있고
거실과 다이닝 공간 창으로 멀리 보이는 아차산뷰가 나름 운치있다.
안개가 낄 때도 그 존재감을 맘껏 드러날 때도 말이다.
그런데 정작 아차산에 가본 것은 두어번 밖에 안된다만...
청소기가 들어오고 그 때문에 청소를 열심히 했더니
아이고야. 집 전세 계약이 홀라당 한번 만에 되어버렸단다.
집을 보여주는 것도 신경쓰이는 일인데
그 일을 더 안해도 된다는 것이 기쁨이지만
12월 4일에는 이제 이사를 가야만 한다.
갑자기 발등에 불이 떨어진다만 다행히 강의가 없는 목요일이고
10주차 강의와 저녁에 하는 비교과프로그램은 끝난 이후이다.
서울에서 거주할 시간이 두달 반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
재취업의 기회를 노리면서 그 결과에 따라
나의 이후 거주지가(몇 년일지는 모르지만) 결정될 것이라고는 생각했었다.
가까운 서울 소재 대학교가 되면 이 집에서 오래 사는 것이고
천안 아산쪽이 되면 남편 회사쪽으로 가는 것이고
동생이 있는 세종 조치원쪽이 되면 동생 옆으로 가는 것이고
그렇게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용인권의 대학교가 되는 바람에
생각지도 못한 용인권으로의 이사가 제일 우선 순위가 되었다.
결혼할 때 남편이 다니던 회사 근처이고
아들 녀석이 다니던 대학 근처이다.
이것도 운명일까?
이렇게도 운명의 힘이 강한 것이라면
내가 아등바등하면서 노력할 필요가 없는 것인가?
심난한 마음이 저절로 반영된 것처럼
오늘 아침 삼십분은 더 일찍 눈이 떠졌고
일단 눈이 떠지면 다시 잠이 들기는 힘들고
늦게까지 강의가 있는 날이라 남편의 삼시세끼를 준비하고 있다.
달걀 두 개 삶고 유부초밥 싸서 나랑 각각 도시락 하나씩 만들고
어제 콩나물국과 두부참치 김치찌개는 끓여두었고
두부, 고구마, 당근 야채 구운 버전과 생야채 버전을 준비해두고
통밀 식빵 사두었으니 땅콩잼과 요거트랑 잘 먹으면 되겠다.
남편은 자신이 엄선하여 주문한 무염무당을 주장하는 땅콩잼과 요거트(외국산)를 한번 먹어보더니
단 맛이 난다면서 음식을 가지고 속였다고 분노중이다.
나보러 자꾸 먹어보란다.
나는 원래 땅콩잼은 뻑뻑해서 요거트는 물컹거려서
잘 먹지 않는 품목이다.
조만간 버려야할지도 모른다.
그것도 운명이다.
누가 속을까싶은 과대 허위 광고에 자꾸 속는 것이 남편의 성품이다.
과거 모여대 일문과 출신이라는 참한 아가씨에게 속아서(취업이 안되어서 알바한다고 눈물을 보였단다.)
가짜 족보를 10만원주고 사온 사람이다.
그 여대에는 일문과가 없다고 알려주었더니 그럴리가 없다고 나에게 화를 한참 냈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족보에는 남편도 시아버님 항렬도 물론 없었다.
어쩌겠나. 바꾸려해도 웬만해서는 바꿀 수 없는 운명의 굴레이다.
그렇담 성격과 성향이 운명을 결정짓는 것일까?
달리는 이름 붙일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에
놀랍기도 하고 무섭기도 한 새벽이다.
이제 제법 해가 늦게 뜬다. 아직 깜깜한 것을 보면...
(이 글을 쓰고 오늘에서야 집앞 버스정류장에 서는 버스 3대가 모두 잠실역에 간다는것을 알았다. 이제서야 조금 익숙해졌는데 곧 이별이라니.
올 가을 단풍든 아차산은 꼭 가봐야겠다.)